사무처 직원에서 당대표까지… ‘거위의 꿈’ 이룬 朴대통령의 복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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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신임대표 이정현]이정현 대표가 걸어온 길
호남 핸디캡에 黨변방 맴돌다가 2004년 박근혜 대표가 공보 맡겨
MB정부땐 朴대통령 대변인 역할… 全大서 “발탁해준 대통령에 감사”
이정현 ‘청와대 2중대’ 일각 우려 의식 “정부人事 등 靑에 할말 하겠다”

환호에 답하는 새누리 새 지도부 9일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신임
 당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최고위원들이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창수 최연혜 최고위원, 이 대표, 조원진 
강석호 이장우 최고위원.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환호에 답하는 새누리 새 지도부 9일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신임 당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최고위원들이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창수 최연혜 최고위원, 이 대표, 조원진 강석호 이장우 최고위원.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미치도록 일하고 싶습니다!”

9일 새누리당 당권을 거머쥔 이정현 신임 대표는 전당대회 정견 발표 때 목청이 터져라 “일하고 싶다”고 외치고 또 외쳤다. 이번에도 그 간절함은 통했다. 이 대표는 경선을 앞두고 홀로 배낭을 멘 채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버스정류장 앞 기사식당에 무작정 들어가 혼자 식사를 하는 택시기사와 마주앉아 바닥 민심을 청취하고 ‘웰빙 정당’의 머슴 대표를 자처했다.

그렇게 ‘거위의 꿈’은 현실이 됐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은 이 대표가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으로 사용한 음악이다. 처음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라는 노랫말이 자신의 처지와 똑같다고 느낀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전당대회 정견 발표 때도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 준 박근혜 대통령께 감사함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박심(朴心·박 대통령의 마음)’을 두고 한 말이지만 과장된 얘기도 아니다.

이 대표는 스스로를 ‘비주류의 비주류’ ‘무(無)수저 출신’이라고 말한다. 전남 곡성 ‘깡촌’ 출신으로 1985년 구용상 전 민주정의당 의원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민정당 최말단인 간사 ‘병’으로 당직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에서는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호남에서는 ‘영남당’ 출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변방을 맴돌아야 했다.

그의 정치 인생이 180도 달라진 건 박 대통령을 만나면서다. 박 대통령은 2004년 당 수석부대변인이었던 이 대표에게 자신의 공보 역할을 맡겼다. 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패한 뒤 ‘정치적 칩거’에 들어갔을 때는 이 대표가 박 대통령의 ‘대변인격’으로 언론과의 소통을 도맡았다.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한 건 이때부터다.

그만큼 박 대통령에 대한 로열티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이 대표는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던 2013년 4월경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책을 읽고 있다. 당시 영국 아이들은 ‘남자도 총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대처가 11년 반 동안 총리를 하면서 나온 얘기다. 3년 뒤 한국 아이들이 ‘남자도 여자만큼 대통령을 잘할 수 있느냐’고 물을 날이 올 것이다.”

당내에선 박 대통령과의 이런 ‘특수 관계’가 수평적 당청 관계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이 대표는 “하늘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며 “앞으로의 당청 관계는 지금까지 봐온 당청 관계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만일 청와대와 정부가 국민의 생각과 괴리가 있다면 횟수에 관계없이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당이 ‘청와대 2중대’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겠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이날 정견 발표 때 “우리 당뿐만 아니라 정부의 인사도 탕평 인사, 유능한 사람들이 발탁되는 능력 인사, 어렵고 힘든 사람을 배려하는 배려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확실히 관여하고 개입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많은 비판을 받아온 인사 문제에 당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이 대표가 2014년 6월 청와대를 나올 때 사실상 경질됐다는 말도 있어 청와대의 뜻에 고분고분 따르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 대표를 정치적으로 발탁한 건 박 대통령이지만 ‘지역주의 타파의 전사’ ‘호남 대표’를 만든 건 스스로의 ‘무모한 도전’의 결과인 만큼 이제부터 ‘이정현식(式) 정치’를 보여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대표는 “말단 당 사무처 직원에서 대표까지 16계단을 밟아 올라왔다”며 “죽어야 산다는 각오로 새누리당의 행태, 관행, 시스템, 의식을 바꿔 나가는 데 매달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홍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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