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관리형’ 이원종 靑실장으로 안보-경제위기 극복할 수 있나

  • 동아일보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어제 사의를 표한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의 후임에 이원종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장을 임명했다. 또 친박(친박근혜)계 강석훈 의원을 경제수석비서관에, 안종범 경제수석을 정책조정수석에 각각 임명했다. 같은 날 새누리당은 비박(비박근혜)계 3선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내정했다. 4·13총선 참패 후 한 달여 만에 나온 청와대 개편과 당 쇄신 인사가 이 정도라니 실망스럽다.

한국형 대통령제 아래 비서실장은 국정 운영에 있어 국무총리보다 비중이 큰 자리다. 국정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당정청을 아우르는 정치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병기 전 실장은 청와대 3인방의 ‘문고리 권력’에 눌려 조용한 관리에 그쳤다. 총선 민의가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 국정 운영을 심판한 만큼 이번에는 이 신임 실장 같은 가신그룹 출신보다는 직언도 마다하지 않을 외부 인사를 택했어야 했다.

이 신임 실장은 관선 충북지사와 서울시장, 민선 충북지사를 연임한 공무원 출신이다. 행정의 ‘달인’일지언정 여소야대 정국에서 안보 경제 복합 위기를 헤쳐 가야 할 박근혜 정권 4년 차 청와대를 이끌 내공의 소유자로 여길 사람은 없다. 결국 대통령의 ‘말씀’이나 받아 적는 관리형 청와대로 계속 가겠다는 뜻이다. 이 신임 실장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충청 출신 고위 공직자 모임인 ‘청명회’ 멤버다. 적잖은 친박이 미는 ‘반기문 대망론’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란 정치적 해석도 난무하는 상황이다.

강석훈 경제수석은 총선 때 서울 서초을 경선에서도 탈락했다. 낙천자에게 보은 인사로 최고 경제 참모직을 맡길 만큼 지금 상황이 한가한가. 청년 실업률은 계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경제 수치는 바닥이다. 경제 실패 책임을 물었어야 할 안종범 수석을 정책조정수석으로 영전시킨 것도 경제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무엇보다 총선 때 대통령의 ‘정치 메신저’로 나서 당을 청와대의 하부 기관쯤으로 전락시킨 현기환 정무수석을 내치지 않은 것은 총선 민의에 귀를 닫겠다는 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용태 혁신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여당 내 야당’을 자임하며 쇄신 의지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친박이 과반인 여당에서 40대 비박 3선 의원이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갖고 쇄신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벌써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보수혁신특별위원회의 재탕이 될 것이라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보수혁신위가 추진한 상향식 공천제와 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결국 흐지부지됐다. 이번에는 혁신위가 만들 당헌·당규 개정안은 자체 의결로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확정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친박 정당의 전국위에서 당을 확 뜯어고칠 혁신안을 의결해 줄지 의문이다.

김 위원장은 수직적 당청 관계를 일신하고 계파 청산을 담은 혁신안이 관철되지 않는 상황이 되면 당장 직을 그만둔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2012년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회부됐을 때 앞장서 부결을 주도한 김 위원장이 특권 내려놓기를 어떻게 추진하는지도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이원종#지역발전위원장#강석훈#안종범#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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