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트럼프 망언에 침묵하는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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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핵무장론’을 주장했던 미 공화당 대선 선두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2일엔 “북한이 한국 일본과 전쟁을 한다면 그건 그들의 일이다. (한국과 일본에) 행운을 빈다. 잘들 즐겨라”라고 망언을 했다. 북한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도 미국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본이 미국보다 북한을 빨리 제거할 것”이라며 일본의 무장을 지지하고 “미국에 득이 안 된다”며 주한 미군 철수도 거듭 주장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그를 계속 무시할 수만은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공식 논평을 냈다. 1일 핵안보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핵 문제 등 한반도 관련 정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후보가 백악관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외교, 핵 정책, 한반도, 전반적인 세계에 대해 무식한 사람”이라는 강한 표현으로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일 핵무장론은 핵안보정상회의에서까지 거론됐다”고 했다. CNN은 “트럼프 발언이 불안을 확산시키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보니 대통령도 이번 회의에서 한일 지도자들에게 안보동맹을 재확인시킨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에게 모멸을 당한 나라들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멕시코는 전직들에 이어 현직 대통령까지 트럼프 발언을 규탄하고 있다. 트럼프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마약 강간범’으로 비하하고 “너희들 돈으로 국경에 장벽을 세우라”는 말로 멕시코를 공격했다. 멕시코 전현직 대통령들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양국관계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트럼프 화형식까지 벌어졌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는 “트럼프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평화와 사회 통합은 물론 경제 발전에도 위협”이라고 했다.

▷한국은 너무 조용하다. 외교부 국방부 논평은 찾을 수 없고 외교채널을 통해 ‘트럼프 캠프’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온갖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는 여야 그 어느 누구도 트럼프 발언에 대한 분노와 경고가 없다. 우리가 침묵할수록 트럼프는 우리를 깔볼지 모른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도널드 트럼프#한일 핵무장론#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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