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이한구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전남·북 지역 공천 면접을 앞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이 위원장은 최근 당내 ‘공천 살생부’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자 “우리 당의 공식 기구에서 철저하게 조사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새누리당의 4·13총선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간 집안싸움이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당내에는 ‘공천 살생부’부터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둘러싼 각종 루머가 ‘찌라시(정보지)’ 형태로 난무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김무성 대표가 친박(친박근혜)계로부터 40명 물갈이를 요구받았다’는 루머가 제기되자 28일 “당의 공식 기구에서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루머의 발단은 김 대표와 K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책사로 불렸던 K 교수는 김 대표와 지난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로부터 “40여 명이 공천에서 탈락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K 교수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정두언 의원에게 이 말을 전했고, 정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만난 김 대표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 당선을 도왔던 K 교수는 청와대를 비롯해 친박계와 불편한 관계인 인사다.
이 위원장은 27일 정 의원의 공천 면접이 끝난 뒤 별도로 15분간 단둘이 만나 소문의 실체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하루 뒤 이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소문과 관련해) 여러 가지 상황을 조사했다”며 “(소문에 언급된 당사자인) 정 의원에게서 직접 들은 사안과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안까지 생각해 보면 3김 시대 음모정치의 곰팡이 냄새가 많이 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공정한 공천을 해야 하는 사람이 찌라시 딜리버리(배달원), 찌라시 작가 비슷한 식으로 의혹을 받는 걸 그대로 놔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사실상 김 대표가 실체가 없는 공천 루머를 정 의원에게 전해 파장을 일으켰고 공관위의 권위도 훼손됐다는 얘기였다. 기자회견 직전 이 위원장은 친박 핵심 의원들과도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위원장은 “김 대표와는 얘기한 바 없다. 공관위 일동 명의 조사 요청이 아니라 개인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대표는 통화에서 “K 교수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시중에 떠도는 얘기를 전했을 뿐이고 청와대나 친박 의원들로부터 그런 (물갈이) 요구를 받은 적도 없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음에도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치적인 공세에 불과하다. 실체도 없는 의혹에 대응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박계는 김 대표가 ‘자작극’을 벌이고 있다며 부글부글 끓었다. 마치 청와대나 친박계가 공천에 개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김 대표가 말을 흘렸다는 주장이다.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은 “백해무익한 분란 조장 악담”이라고 했다. 친박계는 이 위원장의 조사 요청에 대한 김 대표의 반응을 본 뒤 향후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김 대표가 없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김 대표 측은 이 위원장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이 위원장과 친박계가 대표 흔들기에 나선 게 아니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향후 계파 간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당내에는 각종 루머를 둘러싼 계파 간 내홍이 격화되는 모습이다. TK(대구경북) 지역 의원의 물갈이 순위를 매긴 찌라시가 유포되기도 했고, ‘이 위원장이 청와대 근처에 별도의 사무실을 차려 공천에서 탈락시킬 의원들 명단을 추리고 있다’는 근거 없는 낭설까지 떠돌고 있다. 그만큼 공천을 둘러싸고 계파 간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당의 험지’ 호남 예비후보 공천면접
2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전남과 전북 공천 단독 후보 신청자들이 공천면접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전주 완산을), 신정일 예치과의원 원장(전남 여수갑), 이정현 최고위원(전남 순천-곡성), 주영순 의원(전남 무안-신안).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한편 경선을 준비하는 현장에서도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공관위는 후보자들에게 ‘유령 당원’ 사례를 발견하면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라고 공문을 발송했다. 한 서울지역의 예비후보는 “책임당원을 따로 추려 다시 제공한 명부로 전화를 세 차례나 돌려 봤지만 50%가 넘는 인원이 책임당원이 아닌 것으로 나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당원 30%, 일반국민 70% 경선을 실시하는 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절벽 수준으로 현역 의원에게 절대 유리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현역 기득권을 철통 방어하는 시스템에서 최대한 유연성과 공평성을 찾아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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