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 사퇴]검사들 “청와대 뜻일 것” 靑 “0.001%도 가능성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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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퇴 배경 놓고 정치권 파장

떠나는 채동욱 총장 13일 오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 발표 직후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을 떠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떠나는 채동욱 총장 13일 오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 발표 직후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을 떠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법조계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가 오로지 혼외 아들 의혹 때문만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채 총장 사퇴의 배경은 청와대와 여권이 애초부터 그를 검찰총장으로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특히 채 총장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수사팀의 뜻을 받아준 것이 여권 내부에서 채 총장에 대한 불만에 불씨를 지폈다. 그런 상황에서 ‘혼외 자녀설’이 터져나왔고 ‘총장 감찰’이란 초유의 카드가 나온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통제 가능한 검찰총장’을 원하는 여권 내부의 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그런 의혹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사태로 검찰권 독립이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여권, 채 총장 임명 때부터 내켜하지 않아

올해 2월 초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김진태 당시 대검찰청 차장(61)과 채동욱 서울고검장, 소병철 대구고검장 등 3명을 총장 후보로 법무부에 추천했다. 당시 검찰의 독립성을 유지한다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민간위원까지 참여하는 방식으로 도입된 총장 추천위가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고 청와대가 원하던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원래 안창호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김학의 당시 대전고검장을 총장 후보로 적극 밀었다. 친박 캠프 내부에서 정권 초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려면 여권과 친밀한 인사가 총장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천위는 두 사람 모두 탈락시켰다.

여권 일각에선 청와대가 세 후보 중 누구도 마뜩잖게 생각해 총장 추천위를 다시 연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지만 여론의 비판에 부딪혔다. 이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채동욱 당시 고검장을 대통령에게 총장 후보로 제청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등 인사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청와대는 큰 결격 사유가 없었던 채동욱 후보자 추천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정권의 의중과 무관하게 총장 추천위를 통해 임명된 최초의 검찰총장 후보자인 채동욱 고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별 탈 없이 끝났다. 청와대는 이후 김학의 전 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에 임명하는 파격을 감행했지만 ‘성접대 의혹’ 사건으로 취임 6일 만에 사퇴했다.

○ 여권,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등 돌려

채 총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특별수사팀이 수사토록 하는 등 적극 힘을 실어줬다. 당시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두고 법무부와 검찰 내부에서 논란이 벌어졌고 법리적으로 무리라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채 총장은 수사팀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원 전 원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자 야권은 ‘대선 무효론’까지 들고나오며 거세게 반격했고 국정원 국정조사와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정권 핵심부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법 적용으로 정권이 타격을 받았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채 총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권 일각에서 은밀히 나돈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5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홍경식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임명하는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둘 모두 채 총장보다 한참 선배인 데다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인사여서 박 대통령이 검찰의 군기를 잡기 위해서 임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검찰 안팎에서 청와대가 채 총장 교체 방침을 정했다는 설이 나돈 게 이 즈음부터다. 지난달 말엔 국정원 댓글 수사 책임자인 송찬엽 대검 공안부장 교체설과 함께 지난해 대선에서 공을 세운 ‘친박(친박근혜)’ 인사의 민정수석실 비서관 임명설 등이 나왔다. 소문의 진위는 확인할 수 없지만 청와대와 채 총장 체제 간의 갈등 기류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 일선 검사들, “청와대의 뜻일 것”

13일 검찰 내부에서는 채 총장의 사퇴가 청와대의 의중이 담긴 작업의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한 검사는 “청와대와 교감이 없고서야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며 “대통령이 순방을 다녀온 뒤에 법무부 장관이 이런 지시를 했다는 건 청와대와 교감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 공안통 검사는 “이런 식으로 총장을 사퇴하게 하는 건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 내부에선 결국 차기 총장으로 친박 성향이 강하거나 대통령 말을 잘 듣는 총장을 앉히려 할 것이라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조직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부장검사는 “한상대 총장이 물러나고 4개월 공백 끝에 채 총장이 취임해 겨우 자리 잡혔는데, 이렇게 떠밀려 나가 안타깝다. 한동안 다시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검사도 “청와대가 검찰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검찰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며 “검찰이 독립적이지 못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청와대, 개입 의혹 강력 부인

청와대는 이날 채 총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섣부른 반응은 채 총장이 사의하기까지의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부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국정원과 청와대가 이번 혼외 자식 보도의 배후에 있다거나 법무부가 채 총장의 감찰을 지시한 것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등 여러 소문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이번 보도의 배후에 있다는 소문은 0.001%도 사실일 가능성이 없다”며 “청와대는 총장의 뒷조사를 캐고 다닐 만큼의 인력도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법무부가 혼외 아들의 엄마라고 의심받는 임모 씨의 편지가 공개돼 논란이 확산되면서 진실 규명이 필요하며 감찰은 비공개로 진행하기보다는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자체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전에 청와대와 조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도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김태흠 당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이 여러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며 사적인 일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처사”라며 “정치권의 자의적 해석과 주장이 오히려 일을 키우고 국민에게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은 사실상 청와대의 뜻이 관철된 것이라며 들끓었다. 야당 법사위원들은 법사위 소집을 요구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현직 검찰총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한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채 총장을 제거하려는 권력의 음모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호준 원내대변인도 “채 총장 사퇴는 청와대와 국정원의 검찰 흔들기 결과이자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길들이려는 음모”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채 총장의 사퇴는 사실상 청와대의 뜻으로 봐야 한다”며 “외풍을 막아주던 채 총장의 사퇴로 검찰의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가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유성열·최예나·동정민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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