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지도자회의 구성을 제안했고,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시민사회와의 연대기구 구성을 거부하고 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 두 사람이 정치적 협상의 여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말뿐이다. 4·13총선에서 ‘협치’의 가능성 때문에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국민적 신망을 잃은 데다 당내 비박계로부터 연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데도 여전히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버티고 있다. 야당과 청와대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할 여당 자체가 지리멸렬 상태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돌출 제의했다가 의원총회에서 퇴짜를 맞는 바람에 대표로서의 권위를 상실했다. 이런 중차대한 시국에 여야 대표들이 아무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불운이다.
박 대통령이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할 때와 달리 지금은 퇴진도, 임기 단축도, 2선 후퇴도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검찰 조사까지 받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정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적당히 버티면서 시간을 끌다 보면 민심이 돌아설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정치가 실종된 상태에서 힘과 힘이 부딪치면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런 파국을 원치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은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각오를 밝혀야 하고, 야권은 박 대통령 대신 국정을 꾸려갈 국회 추천 총리를 내세우는 등 정치적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 유력 대선 주자로 어느 누구보다 정치에 앞장서야 할 문 전 대표가 “총리 후보 얘기는 지나간 단계”라며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