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3대세습 체제로]北 3대세습 김경희-장성택 섭정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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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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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수 있는 건 핏줄뿐… ‘어린 왕세자’ 고모부부가 보좌

1960년대 김일성-김정일-김경희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공개한 1960년대 초반 김일성과 김정일(왼쪽), 김경희(오른쪽)의 모습. 김일성은 수상, 김정일은 김일성대 재학생, 김경희는 고급중학교 학생일 때 모습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60년대 김일성-김정일-김경희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공개한 1960년대 초반 김일성과 김정일(왼쪽), 김경희(오른쪽)의 모습. 김일성은 수상, 김정일은 김일성대 재학생, 김경희는 고급중학교 학생일 때 모습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대장으로 임명돼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고 고모 김경희가 북한군 대장에 임명되면서 ‘김정일 가족 경영체제’가 구축됐다. 지금까지는 주요 직책에 형식상 측근들을 임명해 좌지우지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방식도 가족이 주요 직책을 맡아 운영하는 식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족경영 체제 구축의 핵심에는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이 있다. 특히 김경희가 대장으로 승진해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점이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이미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북한 공안기관을 틀어쥐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해 6월에는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보좌하기 위해 부부 후견인 김경희와 장성택이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김경희는 김정일도 못이기는 ‘독한 카리스마’의 여동생

여성 중 처음으로 대장 칭호를 받은 김경희가 김정일과 핏줄을 나눈 유일한 동생이자 김정은의 고모이며 장성택의 부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인간 김경희의 과거 행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김경희는 1946년 5월 30일 김일성의 셋째로 태어났다. 위로 김정일(어릴 적 러시아식 이름은 유라)과 슈라로 불린 둘째 오빠가 있었지만 슈라는 김경희가 태어나고 몇 달 뒤 연못에 빠져 숨지는 바람에 얼굴조차 모른다. 세 살 때인 1949년에는 생모 김정숙마저 출산 중에 숨진다. 이후 김성애가 의붓어머니로 들어오면서 김경희는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경희의 외모나 성격은 생모 김정숙을 쏙 빼닮았다고 한다. 김정숙은 빨치산 시절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도 빨래한 김일성의 속옷을 몸속에 품어 체온으로 말리는 헌신으로 사랑을 쟁취한 ‘독한’ 여성이었다.

모전여전인지 김경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도 남편 장성택과의 결혼 전 연애과정이다. 김경희는 김일성대 경제학부 재학 시절 당시 학부 사로청위원장이었던 장성택에게 빠졌다. 하지만 군부 출신의 사위를 바랐던 아버지 김일성과 오빠 김정일은 둘의 만남을 반대하면서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아예 추방시켰다. 하지만 김경희는 주말마다 아버지 차를 직접 몰고 원산까지 내려가 장성택의 기숙사에서 빨래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김경희의 고집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성택과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자식도 없어 입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희는 1980년대부터 술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는 회고록에서 ‘김경희가 양주를 와인 들이켜듯 마셨고 술주정이 고약했으며 이럴 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고 전했다. 또 남편 장성택을 매우 앙칼지게 대했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성택, 더 마셔” 하며 부하나 가정부를 대하듯 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엔 장성택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경희는 오빠가 후계자로 임명된 뒤 노동당 국제부 과장과 부부장을 지냈으며 1987년에 노동당 경공업부장으로 임명된 이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다. 경공업부장은 권력의 핵심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자리다.

하지만 김경희는 직책과 상관없이 오빠를 위해 지금껏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역할을 막후에서 수행해왔다. 특히 김정일이 성혜림-김영숙-고영희-김옥 순으로 여인들을 바꾸어가는 동안 모든 뒤처리를 감당했다는 후문이다.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김정남이 태어나자 이 소식이 아버지 김일성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준 것도 그였고, 김정일이 고영희에게 빠지자 성혜림을 모스크바에 보낸 사람도 김경희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의 여인들은 시누이인 김경희에게 꼼짝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김정일의 자식들도 고모인 김경희의 큰 관심 속에서 성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편 장성택의 형과 동생, 누나의 자녀들 혼사도 직접 챙겨왔다고 한다.

이렇게 로열패밀리를 직접 관리해온 김경희는 이제 추가로 역할을 떠안은 셈이다. 조용한 후원자에서 벗어나 조카 김정은이 무난히 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게 적극적인 후견인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에 김경희가 급부상한 배경을 살피면 후계 문제에 관한 한 장성택도 완전한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北, 김정은 후계 공식화
▲2010년 9월28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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