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반하는 행동 곤란”

  • 입력 2009년 7월 15일 02시 59분


지하주차장 통해 ‘퇴장’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14일 오후 9시경 전격적으로 자진 사의를 밝힌 직후 퇴근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박영대 기자
지하주차장 통해 ‘퇴장’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14일 오후 9시경 전격적으로 자진 사의를 밝힌 직후 퇴근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박영대 기자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23일만에 전격 사퇴…

李대통령 내정 철회

千, 각종의혹에 “책임 통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 구입 과정 등의 의혹이 불거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51·사법시험 22회)가 14일 오후 전격 사퇴했다.

천 후보자는 이날 오후 8시 반경 조은석 대검찰청 대변인을 통해 낸 ‘사퇴의 변’에서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공직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15일 천 후보자의 내정을 공식 철회하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참모들의 보고를 받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에 반하는 행동은 곤란한 것 아니냐, 고위 공직자를 지향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처신이 모범이 돼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지난달 21일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천 후보자는 23일 만에 개인의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 물러나게 됐다. 천 후보자는 2003년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임명 전에 사퇴한 첫 사례다.

천 후보자는 14일 오후 대검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통해 보도자료를 내고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적극 해명하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천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천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곧바로 새 검찰총장 후보자 인선 작업에 착수했으며, 당초 천 후보자와 함께 검찰총장 후보로 꼽혔던 권재진 전 서울고검장(56·사시 20회)과 문성우 전 대검찰청 차장(53·사시 21회), 이귀남 전 법무부 차관(58·사시 22회),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54·사시 21회) 등이 물망에 올라 있다. 고검장과 검사장급 후속 인사는 후임 검찰총장 후보자가 정해진 직후에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천 후보자의 사퇴에는 여권 내부의 부정적 기류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오늘 국회 법사위원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뒤 청와대에 ‘하루 이틀 정도 여론 추이를 지켜본 뒤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면서 “대통령이 천 후보자의 사의를 수용해준 것이 여당의 의견을 존중해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께서 하루속히 후임 검찰총장 후보자를 지명해서 검찰조직의 동요를 추스르고, 여당은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지향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 국회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천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하려 했지만 천 후보자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의 반대로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천 후보자는 자질과 도덕성 등에서 모두 수준 미달”이라며 “천 후보자에 대한 내정을 철회할 것을 이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당 5역 회의에서 천 후보자에 대해 “기관 내부나 국민의 신뢰를 얻기에는 크게 미흡하다. 이 대통령도 마땅히 (임명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3일 열린 천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서울 강남 고가 아파트 구입 과정의 자금 출처 △친분 있는 기업가와의 동반 골프여행 의혹 △천 후보자 부인의 명품 쇼핑 △천 후보자 아들의 호화 결혼과 병역 문제 등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불거졌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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