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측 ‘관세환급 양보’ 끈질긴 요구에 “협상 필요없다” 버텨

입력 2009-07-14 02:56수정 2009-09-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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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주역들-뒷얘기

삼겹살 관세기간 연장 압박… ‘미스터 버럭’ 소리 듣기도

답변 기다리고 논리적 설득… “협상 전문가 이렇게 많나” EU측도 혀 내둘러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이혜민 자유무역협정(FTA) 교섭대표는 한국과 유럽연합(EU)의 FTA 협상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총책임자다. 하지만 지휘자 뒤에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있는 것처럼 김 본부장과 이 대표 뒤에는 밤잠을 설쳐가며 국익을 건 줄다리기를 거듭한 수백 명의 협상 실무자가 있었다.

EU 27개국 vs 한국

27개국의 연합체인 EU는 지금까지 한국이 FTA를 맺은 상대와 너무 달랐다. 회원국들은 언어가 다른 만큼 이해관계도 제각각이었다.

“EU 측 협상 관계자들은 자동차, 명품 등 협상 품목이 달라질 때마다 ‘이건 회원국의 관심 품목’이라며 강경하게 나왔다. 나중에 보니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게 없었다.” 한국 협상단에서 원산지-통관 분과장을 맡았던 김회정 기획재정부 관세제도과장은 치열했던 협상 과정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EU 협상단이 “회원국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알려주겠다”면서 돌아가면 몇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서비스 분과장으로 일한 이승재 재정부 금융협력과장은 “EU 회원국의 금융제도 현황 자료를 달라고 했는데 받기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다”며 “독촉도 하고 가끔은 회유도 하면서 회의를 끌고 나갔다”고 소개했다.

EU 측의 협상 방식은 미국과 달랐다. 이 대표는 “미국은 말끝마다 ‘미국이 원한다(US want)’는 표현을 쓰면서 밀어붙였지만 EU는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협상에 임했다”고 말했다.

겨루기와 인간적 갈등

협상기간이 한미 FTA보다 10개월이 더 걸렸던 한-EU FTA는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처음 1년 동안 7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핵심쟁점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이후 10개월 동안 8차 협상이 열리지 않았다. 정부 안팎에서 ‘결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협상팀은 물밑 협상을 꾸준히 벌였다. 이성한 재정부 FTA국내대책본부장은 “외부에서 볼 때는 답답할 수도 있었지만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계속 밀어붙였다. EU가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확인하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한국과 EU는 올 3월 서울의 8차 협상에 이어 4월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최종 합의를 시도했지만 관세환급을 둘러싼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당시 런던 협상에 참석했던 통상교섭본부 당국자는 “EU 협상팀이 ‘생각보다 회원국들의 반대가 심하다’며 양보를 요청하기에 ‘관세환급 제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더는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버텼다”고 말했다.

협상 실무자들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사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여한구 지식경제부 기후변화정책팀장은 2007년 9월 벨기에 브뤼셀 협상 중 첫딸이 태어나 EU 측으로부터 곰 인형을 선물로 받았다. 지난해 8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협상 중에 부친의 별세 소식을 듣는 아픔도 겪었다. 여 팀장은 “두 번 다 자리를 지키지 못해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이제 한-EU FTA가 성공적으로 끝나 조금은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제조업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고 번번이 EU 협상단을 밀어붙이다 상대방으로부터 “‘디렉터 여’는 협상장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남은 뒷얘기

EU 협상단은 ‘한국에 이렇게 많은 협상 전문가가 있는 줄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올해 2월까지 농업 분야 협상을 맡았던 정현출 농림수산식품부 경영조직과장은 차근차근 설명을 하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상대방을 강하게 압박해 협상팀 내부에서 ‘미스터 버럭’으로 불렸다. 그는 냉동삼겹살 관세 철폐시기를 미국처럼 2014년으로 앞당겨달라는 EU 협상팀의 요구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승재 재정부 금융협력과장은 EU 측의 끈질긴 요구에 뚝심으로 맞서 금융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막아냈다. 마지막까지 협상에 진통을 겪었던 원산지 기준을 담당한 양정식 지경부 사무관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력을 활용해 통계에 바탕을 둔 자료로 상대를 압박했다.

반면 이 대표는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으로 EU 협상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협상팀 관계자는 “이 대표는 회의 진척이 없을 때마다 이냐시오 가르시아 베르세로 EU 수석대표와 프랑스어로 얘기해 돌파구를 찾곤 했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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