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조문행렬 1km… 일부 정관계 인사 조문 저지당해

  • 입력 2009년 5월 25일 03시 05분


“고이 잠드소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줄을 지어 조문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김해=사진공동취재단
“고이 잠드소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줄을 지어 조문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김해=사진공동취재단
조문객 이틀새 17만여명, 헌화하는데 1시간 걸려

시신 부패방지 특수처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는 서거 이틀째인 24일에도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들었다. 23일부터 이어진 조문행렬은 이날에도 이어졌다. 김해시에 따르면 이틀 동안 다녀간 조문객은 17만여 명에 이른다. 진영읍 인구(3만1000여 명)의 6배 가까운 인파다.

○ 소낙비에도 조문 이어져

휴일을 맞아 봉하마을 빈소에는 오전 6시부터 전국에서 조문객이 몰렸다. 분향소 안에는 국화로 제단을 만들었고 그 위에 노 전 대통령 영정을 모셨다. 봉하마을에서는 이 공식 빈소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자원봉사센터에 마련된 분향소 등 2곳이 운영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무더위에 따른 부패를 막기 위해 전날 염습 과정에서 특수처리를 했다. 분향소 내 제기에는 노 전 대통령이 투신 직전 찾았다던 담배를 떠올렸는지 조문객들이 놓아둔 담배가 여러 개비 있었다.

낮 12시에는 분향소에서 1km 떨어진 본산농공단지 입구부터 조문행렬이 늘어섰다. 오전부터 진영읍내에서 마을까지 통하는 모든 도로는 조문객들의 차량 때문에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봉하마을에서 창원 방면 4km 지점인 진영 세영병원과 김해 방면 3km 지점인 설창마을까지 극심한 정체를 보여 이 구간 이동시간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밀려드는 조문 인파 때문에 분향을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10∼20명씩 분향했지만 조문객이 늘면서 40명씩 단체 분향을 했다. 분향 시간은 30초가량. 마을 입구에서 줄을 선 뒤 노 전 대통령 영정에 헌화하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오후 2시 반경 30분 동안 봉하마을에는 강한 소나기가 내렸지만 이 행렬은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됐다.

일부 조문객은 감정이 북받쳐 실신하기도 했다. 오전 11시 30분경 조문을 마친 50대 여성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오후 4시경 40대 여성이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등 이날 하루 10여 명이 의료진의 치료를 받거나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전남 강진에서는 노 전 대통령과 봉하마을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소중하게 여겼던 한 할머니(82)가 서거 소식을 듣고 실신해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봉하마을 50여 가구 주민들은 이날 대문 앞에 태극기를 조기 형태로 내걸었다. 마을회관 확성기에서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 민중가요와 추모곡이 흘러나와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오전에는 해인사 스님 350여 명과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이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 제지당했던 정동영 다시 조문

이틀간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은 17만여 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김해시가 마을 입구 출입 인파와 차량 등을 파악한 결과 23일 1만 명, 이날 오후 11시 현재까지 16만여 명이 다녀갔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조문객을 위해 마을 광장에서 국밥과 떡, 수박 등 다과를 대접했다. 이날 낮에만 2만 명 이상이 식사를 했다. 당초 1만 명분을 준비했다가 오후 1시경 추가로 음식을 준비해 대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에도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에는 주요 인사들의 발길이 잇따랐다. 하지만 이날도 일부 조문객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제지하는 바람에 조문을 못하고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오후 조문을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빈소가 있는 마을회관에서 약 1.3km 떨어진 동방삼거리 부근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만류로 서울로 되돌아갔다. 문 전 실장은 안전상 문제가 있다는 뜻을 전했고, 박 전 대표는 서울에 분향소가 설치되면 조문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가 조문을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오후 1시 반경 김 의장이 탄 차량이 봉하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노사모 회원 몇 명이 바닥에 드러누워 차량 진입을 막았다. 이에 김 의장 일행이 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빈소로 이동하려 했지만 노사모 회원들이 물을 뿌리고 소리를 지르는 등 실랑이가 벌어져 결국 조문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도 조문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노사모 회원들은 “한나라당은 여기에 절대 한 발자국도 못 붙일 것”이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전날 빈소를 찾았다가 조문을 하지 못하고 돌아섰던 정동영 의원은 이날 다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오전 10시 반경 부인 민혜경 씨와 함께 봉하마을을 찾은 정 의원을 향해 노사모 회원들은 “나가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조문을 물리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정 의원은 “있어서는 안 될 아픔으로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후 7시 40분경 봉하마을 입구에 도착했지만 결국 발길을 돌렸다. 노사모 회원들은 “여기는 아무나 오는 데가 아니다”라며 삿대질과 함께 욕설을 퍼부었고, 경호를 맡은 경찰관들과 몸싸움까지 벌인 탓에 윤 장관은 조문을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김해=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동아닷컴 뉴스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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