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사흘 만에 개성공단 내 남측 인력을 사실상 다시 억류함에 따라 ‘한미 연합군사연습에 대한 보복’이라는 북한의 의도가 명백해졌다.
이번 사태는 개성공단의 태생적 한계를 확인시켜 주는 측면이 강하다. 다만 남북 당국은 서로 ‘개성공단 폐쇄’라는 사태는 피할 것으로 보여 남측 인력 억류 사태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키 리졸브’ 연습에 대한 보복=남측 인력에 대한 재억류는 북한이 9일 밝힌 두 건의 성명서에 이미 예고된 것이다. 북한군 최고 전쟁수행기관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이날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 리졸브’가 북한을 상대로 한 전쟁 연습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동·서해지구 북남관리구역에 대한 보다 엄격한 군사적 통제’와 ‘북남 군 통신 차단’이라는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군 통신은 즉각 차단하고 언제든지 군사적 필요를 이유로 통행을 막을 수 있음을 명백히 한 것으로 보복 성격이 짙다.
그러나 한국 정부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9일 통행 중단 사태가 북한 내 커뮤니케이션 착오에 따른 해프닝으로 보는 의견이 많았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1일 “9일 통행 중단은 북한 군 수뇌부가 군 통신을 차단하면 개성공단 통행이 어렵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결정한 것이며 문제가 되자 하루 만에 통행을 재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군 통신 없이도 통행이 3일 동안이나 이뤄진 상황에서 13일 통행을 차단한 것은 북한 당국의 의도적인 ‘군사적 통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20일 ‘키 리졸브’가 끝날 때까지, 또는 이후에도 개성공단 출입을 막았다 풀었다 하면서 남한 정부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공단 둘러싼 남과 북의 딜레마=언론에선 북한이 10일 통행을 재개하자 즉각 남측 인력의 억류 사태 재발 및 정부 책임론의 대두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의 책임은 통행·통신·통관에 관한 제도적인 절차가 예측 가능하고 완벽하게 틀이 갖춰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는 원칙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정부는 사태가 재발한 13일까지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또다시 북한의 ‘선처’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사태 재발을 막는 방법은 개성공단 내 남측 관계자들을 일정 기간 철수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에서나 국내 정치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따르는 곳이라는 데 정부의 ‘딜레마’가 있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1일 이른바 ‘12·1조치’를 실시하면서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고 유지한 것이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라는 것도 이날 사태로 입증됐다. 북한 지도부에게 개성공단 내 남측 인력은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대남 압박 카드다.
북한 지도부는 국제사회의 여론 악화 등 역풍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한 남측 인력 장기 억류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통행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면서 남측의 인내심을 자극하는 것은 북한의 전통적인 전략 전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