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수상한 10월 사진’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0월 13일 02시 55분



北언론 ‘김정일 공개활동’ 사진 두달여만에 공개

배경속 숲-잔디 가을색 전무… 병세 흔적도 없어

7월 기사와 흡사… 일부 대목 한글자도 안틀려

새벽 긴급보도 - 사진 다량 공개도 의심스러워


북한이 1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소식을 사진까지 곁들여 보도한 데 대해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 속의 김 위원장이 최근 한국과 미국의 정보 당국이 입수한 첩보와는 달리 매우 건강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 이번 군부대 시찰 보도가 꼭 두 달 전인 7월 11일자 군부대 시찰 보도를 일부 표절한 것으로 확인돼 최근 군부대 시찰 자체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앞두고 최고지도자의 건재를 부각하고 대내 결속을 다지려 했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언제 찍은 사진일까=북한 언론들은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북한 최고지도자의 현지시찰)’ 사실을 보도할 때 정확한 방문 날짜와 시간을 밝히지 않는다. 군부대의 경우 부대 번호만 있을 뿐 어디에 있는 부대인지는 알 수 없다.

정보 당국과 전문가들은 유난히 푸른 주변 숲과 나뭇잎 색깔로 미뤄 최근 사진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정보 당국은 국내 조경 전문가 등에게 자문한 결과 사진 촬영 시점이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인 7, 8월경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공원설악산관리사무소의 손경숙 탐방안내원은 “여러 명이 사진을 검토했지만 가을 사진은 아니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단풍은 들 생각도 않고 숲이 울창하며 잔디도 푸른색인 것으로 볼 때 아무리 늦게 잡아도 늦여름 정도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인민군 821부대는 강원 원산과 금강산 중간 통천에 위치해 우리 군의 통신 첩보망에 노출될 수 있는 거리인데도 최근 김 위원장의 방문을 추정할 단서가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

▽너무 건강한 66세 김정일=김 위원장이 부대원과 대화를 나누고 손뼉을 치거나 훈련을 지켜보는 모습 등은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회복한 66세 노인이라고 보기 어려워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동국대 일산병원 신경외과 임소향 교수는 “뇌수술을 받았다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입 모양이 한쪽으로 비뚤어지거나 손가락이 마비된다”며 “수술 후 회복 중인 상태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으로 봐서는 뇌수술을 받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른 흔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뇌출혈이 약하게 왔거나, 기억력과 판단력 저하 정도의 가벼운 뇌 손상만 왔을 때는 거의 정상인과 비슷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7월 기사 표절 의혹=조선중앙통신은 심야인 오전 1시 40분경 관련 내용을 긴급 타전했다.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이 등장한 사진 11장을 8시간 후인 오전 9시경 신속히 보도했다. 일과 중에 첫 보도가 이뤄지고 하루 이틀 지나 2, 3장의 사진이 공개돼 온 전례에 비춰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목전에 두고 미국의 낮 시간에 맞춰 김 위원장의 동정을 긴급히 보도한 것은 미 정부에 보낸 모종의 시그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 보도엔 이재일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백승주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인민군 895부대를 시찰했다고 보도한 조선중앙통신 7월 11일자 기사의 핵심적인 내용이 이번 기사와 거의 같다”며 공개된 사진이 석 달 전에 촬영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7월 기사엔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인 병영구내를 거니시며 수림화, 원림화 실태를 알아보시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번 기사에도 “병영구내를 거니시며 무성하게 자란 갖가지 나무를 보시고 수림화, 원림화를 훌륭히 실현하였다고 하시면서…”라고 돼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교양실, 침실, 식당, 세목장, 부식물창고 등 여러 곳을 돌아보시면서 군인들의 사업과 생활…”이라고 한 대목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똑같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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