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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15일 14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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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보름 전쯤 김대중 씨가 ‘무호남 무국가’라고 하더니 이틀 전에는 이회창 씨가 ‘상유12 순신불사’라고 했다. 다 충무공 말씀인데, 합당한 분이 합당한 말씀을 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회창 씨의 ‘상유12 순신불사’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다.
1597년 7월 19일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조선수군은 전멸했다. 4일 후 선조는 진주에서 백의종군하던 충무공을 다시 3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점검해보니 남은 것이 배는 12척, 수군은 2백여명이었다. 그래서 선조는 ‘이제 수군은 파하고 육전에 힘쓰라’고 명했고 이에 대해 충무공이 8월 19일 불가함을 주장하는 장계를 올렸다. 거기에 이 대목이 나온다.
원문은 ‘상유십이, 출사력항전, 즉유가위야, 전선수과, 미신불사, 즉적불감모아의’인데 골자는 “아직 12척이 남았습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신(微臣미천한 신하, 자신을 낮춰 부르는 겸양어)이 죽지 않은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처음 듣는 표현이고 또한 교만한 태도가 충무공답지 않아 찾아보았더니 사실이 이랬다. 참모가 잘못 보고한 모양이다.
이회창씨는 두 차례 대선에 패배했다.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불패의 군대를 이끌고 그랬다. 이회창씨는 충무공이 아니라 원균에 가깝다. 역사를 보면 원균은 그나마 나았다. 용감했고 주변에 잡음이 없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칠천량 때도 무리한 작전으로 판단해 끝까지 피하려 했으나 곤장까지 치면서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나갔다.
이회창씨는 1차 때는 아들 병역, 2차 때는 아들딸 빌라 문제 등 본인 과오로 패배를 초래했다.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길 수 있었다. 우리 세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회창씨의 착각과 오판이 결정타를 날렸다. 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여론조사를 보고하는 참모에게 화를 냈다. 그 바람에 나온 것이 ‘숨어있는 몇%’라는 여론조사 사상 가장 황당한 이론이다. 그 이론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사실로 둔갑해 우리 편을 마취시켰고 패배에 중요한 원인이 됐다.
어느 전략가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최후의 승부수’를 측근에게 전달했다. 측근 역시 전략가로 통하는데 ‘이거다’ 하며 무릎을 쳤다. 선거일이 목요일이었는데 직전 토요일의 일이다. 월요일자 신문에 대서특필되면 판세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학수고대했는데 감감 무소식이었다. 왜 안하느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이기는데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는 취지로 말하더라고 했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나라가 도탄에 빠지고 위기에 처했다. 당도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패자는 대개 동정을 받거나 복수 때문에 승자도 겁을 낸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다 빼앗기고도 상대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이 공격당하는 부정적 이미지 예컨대 부패, 꼴통, 교만, 비겁, 기회주의, 이기주의 등은 대개 이회창 시절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선량한 분들이다. 잃어버린 9년을 살아내면서도 이회창씨에 대해 별 말 하지 않고 있다. 이회창씨의 잘못을 몰라서가 아니라 본인 심정은 어떻겠는가 하고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나타나면 어떤 심정이 되겠나.
저는 어제 ‘상유12’ 발언과 오늘(15일) 모 신문의 ‘이회창 전 총재 본격 정치활동 재개’ 관련 기사를 본 이후 견디기 힘들다.
장계의 마지막 대목은 적이 감히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 때는 실제로 그랬다. 지금 이회창씨 쪽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가. 제가 알기로 적은 비웃음과 함께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나 이용하기 좋겠나.
천만표 얻은 분 아니냐, 그러니까 그 분을 활용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분도 계시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분만 아니었다면 누가 나가도 백만표를 더 얻어 이겼을텐데 하는 소리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지금 이회창씨가 하고 다니는 말씀 대한민국 국민 중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지금 그 분이 할 일은 자숙하고 참회하고 반성하는 것 말고는 없다.
원균은 그 때 전사했다. 그러고도 비참한 이름을 만세에 남기고 있다. 참고가 되셨으면 한다.
끝으로 발언 준비하면서 많이 참았다. 인간적인 정리로 참고 있는 후배로부터 더 지독한 말을 듣지 않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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