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5개국 한목소리로 ‘위기 메시지’ 北전해야”

  • 입력 2006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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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픽션 ‘더 페닌슐라 퀘스천’을 펴낸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후나바시 요이치 씨. 후나바시 씨는 21일 본보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데는 중국에 대한 공포도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최근 논픽션 ‘더 페닌슐라 퀘스천’을 펴낸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후나바시 요이치 씨. 후나바시 씨는 21일 본보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데는 중국에 대한 공포도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한국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사업을 ‘일시 정지’하는 정도로 (강하게) 하지 않으면 북한에 제대로 된 메시지가 전달되기 어렵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도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최근 한반도 2차 핵 위기를 다룬 논픽션 ‘더 페닌슐라 퀘스천’을 펴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씨는 21일 일본 도쿄(東京) 아사히신문사의 사무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제안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연쇄 방문 외교가 22일로 마무리됐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이 상황을 ‘위기’라고 인정하고 힘을 합쳐 북한에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위기를 원하는 것 아니냐, 미국도 이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위험한 생각이다. 정말로 지금의 한반도가 위기 상황이라는 공통 인식을 갖지 않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지금까지 모든 나라가 위기임을 알면서도 편법적으로 위기가 아니라고 대응해 왔다. 그럴수록 북한은 진짜 위기를 보여 주겠다며 고조돼 갔다.”

―한국도 PSI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나.

“한국이 보조를 맞추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꼭 PSI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하면 된다. 가령 불법 자금 세탁에 대한 금융제재 같은 것이 있다. 개성공단이건 금강산 관광 사업이건 ‘일시 정지’ 정도라도 하지 않으면 북한에 제대로 된 메시지가 전달되기 어렵다. 중국의 방식이 참고가 될 것이다. 중국은 입으로는 외교적 해결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석유 공급 제한이나 금융제재 등에 들어갔다. 한국도 이에 보조를 맞추는 정도가 좋지 않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은 ‘2차 실험 유예’ 소식을 전했다.

“중국은 브리핑할 때 일본이나 한국에 앞부분의 전제를 빼고 ‘핵실험 하지 않는다’만 강조할 수 있다. 과민반응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중국과 북한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나로선 북한의 자세는 전혀 안 바뀌었다고 본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때도 같은 방식으로 말했다. 확약은 하지 않고 전제를 잔뜩 달고 말한다. 그러면서 핵실험 준비를 했다.”

―북한 핵 해결 시나리오는….

“핵실험을 다시 안 한다고 모라토리엄을 건다. 중장거리 전략 미사일을 포기한다. 영변 원자로도 정지한다. 대가(반대급부 제공)는 6자회담에 돌아와 거기서 실행한다. 미국은 금융제재를 시간을 두고 푼다. 미국은 금융제재를 그만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법 행위를 방치하겠다는 것이 되니까. 결국 지난해 9·19 베이징(北京) 공동성명을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9·19성명은 정말 아깝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할 상황인데 지난해 시점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할까.

“어려울지 몰라도 그 길밖에 없다.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두 가지 뼈대가 기본이다. 어떻게 해도 그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셈이니,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것부터 해 봐야 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보여준 태도로 볼 때 가능할까 의문이다.

“핵 위기를 고조시키는 중심에 미국이 있다는 점은 내 책에 충분히 썼다. 미국만 믿으면 아무것도 안 될지도 모른다. 일본 중국 한국이 9·19성명을 실현하려면 뭐가 필요한지를 연구해 미국을 끌어들이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만 따르는 걸로 보인다. 최근에는 미국보다 더 강경한 듯하다.

“일본도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이후 미사일과 핵 사태를 겪으며 미국 이상의 강경파가 됐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선박 강제 검색, 경제제재로는 안 된다. 대화가 필요하다. 일본 단독으로는 어려우므로 역시 6자 혹은 한중일의 틀이 필요하다. 요즘 일본 내에서 일어나는 강경론은 핵실험의 충격에 따른 일시적 반응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올 거다. 7월에 북한이 미사일을 쐈을 때도 선제공격론 등 바보 같은 의견들이 나왔지만 곧 정리됐다.”

―중국이 이번에는 역할을 제대로 해줄 거라고 보는가.

“물론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끌어낼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북한을 겨냥해 하고 있는 일은 상당히 엄혹한 것이다. 다만 북한의 핵 개발은 중국을 향해 주권국가로서 독립적 태도를 보여 주기 위한 측면도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할 듯하다. 이번 책을 쓰느라 취재하면서 놀란 것은 북한 사람들이 중국에 부담감이나 경계심을 상당히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2002년부터 북핵 관련국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는데, 무려 4년간이나 북핵 문제를 좇은 이유가 뭔가.

“1993년 제1차 핵 위기 때 미국총국장으로 일하면서 한반도 핵 위기를 취재했다. 나름대로 북-미 기본합의서를 평가해 성과를 기대했다. 2002년 북한이 우라늄을 농축해 왔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취재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출발점이다.”

―북핵을 둘러싼 구조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었나.

“위기의 본질은 북한이 이념적으로 파탄해 체제 유지가 어렵게 된 현실에 있다. 북한은 역사 속의 고아가 돼 버렸고 핵 말고는 카드가 없어졌다. 여기에 전 지구적 핵 위기가 겹쳤다. 미국이 1998년 인도 파키스탄에 의한 핵 확산을 해결하지 않은 채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을 보며 북한 아니라 어떤 나라라도 핵을 갖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게끔 됐다. 단순한 북한 문제가 아니다. 핵이 테러범의 손에 들어갈 것을 우려할 정도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붕괴된 상황이다. 또 하나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손잡고 나서야 할 한중일 사이에 신뢰가 전혀 없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중-일, 한일 관계는 악화됐고 중국도 민주주의가 아닌 정치체제라는 점에서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대담=서영아 도쿄특파원 sya@donga.com

■ 책 어떻게 나왔나

후나바시 요이치 씨는 일본 아사히신문이 자랑하는 국제문제 전문 칼럼니스트다. 베이징 및 워싱턴 특파원과 미국총국장을 지내며 지구촌 취재망을 구축했다. 이번 저서는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미 브루킹스연구소에 적을 두고 한중일을 각 6번, 러시아를 2번 방문하며 취재 및 집필을 해 왔다.

책 말미의 인터뷰 목록에 올린 사람 수만 159명. 한국의 김대중 이종석 반기문 송민순 등 39명, 미국의 리처드 아미티지, 존 볼턴, 크리스토퍼 힐 등 47명, 중국 탕자쉬안, 우다웨이 등 9명, 러시아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등 9명이다. 북한 관계자 등 익명의 취재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취재는 한 사람을 몇 차례건 만나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듣고 상대국의 카운터파트와 교차 점검하는 방식. 가장 많은 정보가 나온 곳은 역시 미국. 새로 관계를 튼 한국 사람들은 미리 내용을 알고 가서 물으면 그제야 “사실은…” 하고 답이 나오는 식이었다고 한다.

“과장급 시절부터 알고 지낸 탕자쉬안은 이제 너무 바빠져 전화로 뛰어나오라고 하기는 어렵게 됐다”며 웃는 그는 취재원과의 관계는 상대가 낮은 지위에 있을 때 잘 다져 둬야 한다고 말한다.

4년간 그는 그날 만난 사람에게서 들은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해 놓고서야 잠들었다. “언제 어디에 있건 아무리 피곤해도 반드시 메모했다. 인간의 기억이란 생각보다 허술하다. 같은 사람이 전과 다르게 얘기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전에는 이렇게 말했는데 어찌된 거냐’고 물으면 뭔가 이유가 나오고, 배경을 좀더 알게 된다.”

그는 당분간 북핵 문제를 좀 더 다루고, 내년 봄쯤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로 복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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