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북사업’ 현대그룹 흔들리나

  • 입력 2006년 7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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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말 대북(對北)사업을 위해 북한을 수시로 드나들던 현대아산의 과장급 실무자 A 씨는 사업 파트너로서의 북한을 이렇게 평가했다.

“북한은 분명 기회의 땅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과 군부는 믿을 수 없는 사업 파트너다. 어제 한 약속을 오늘 뒤집으면서도 안색 하나 안 변하는 사람들이다. 사업을 하는 것인지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실컷 돈만 쓰고 되돌아오는 것은 없지 않을까 걱정된다. 누가 대북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4년 전 A 씨의 우려는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현대아산이 추진 중인 대북사업들이 줄줄이 난항을 겪으면서 현대그룹의 미래에 먹구름이 끼고 있는 것.

25일 현대아산에 따르면 올해까지 현대가 그룹 차원에서 대북사업을 위해 투자한 돈은 약 6000억 원. 대북사업을 진행하던 초기에 현대상선이 2600억 원, 1999년 이후에는 대북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이 34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현대아산은 지난해 처음으로 56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북한은 현대아산에 사업권을 넘겨준 개성 관광사업을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롯데관광 등 다른 사업자에게 넘기려 하고 있다. 특히 북측은 장소만 제공하던 금강산 사업과는 달리 “개성 관광사업은 우리가 주도하겠다. 남측은 사람만 모집하라”며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북한은 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을 통해 합의한 백두산 관광사업도 사실상 무산시켰다. 이 사업의 준비 과정에는 이미 도로포장 등의 용도로 60억 원 이상의 남북협력기금이 쓰였다.

특히 북한은 개성공단 시공을 전담하고 있는 현대를 1단계 공사 이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단계 사업은 배후 도시를 포함한 전체 2000만 평 사업지 중 100만 평에 불과하다.

재계에서는 현대가 금강산 관광사업 이외에 신규로 대북사업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전문가는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낙마 파동 이후 현대와 북한의 관계가 회복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신뢰 관계가 복원되진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현대 측은 특히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기존의 금강산 관광사업에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외금강호텔 개관 행사에 사전 설명 없이 불참을 통보해 행사를 무산시켰으며, 금강산면회소 건설도 중단시켰다.

현대아산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금강산 관광사업까지 중단할 경우 남북관계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두고 ‘게임’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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