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美 차관보 “北미사일 또 쏠 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 입력 2006년 7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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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중구 정동 주한미국대사관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그는 이날 서울 방문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일본으로 떠났다. 안철민  기자
9일 서울 중구 정동 주한미국대사관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그는 이날 서울 방문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일본으로 떠났다. 안철민 기자
《중국에 이어 7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9일 서울을 떠나기에 앞서 내외신 연쇄 인터뷰를 하고 북한에 대해 강경 메시지를 쏟아냈다. 사실상의 ‘대북 미사일 특사’인 그는 6자회담 참가국들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번 미사일 발사는 이웃나라들에 대한 ‘협박(intimidation)’이었으며 이제 취해야 할 조치는 우리가 그런 협박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중국의 비공식 6자회담 제안에 대해 “미국은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참가국 중 한 나라가 불참한다고 해서 회담이 결렬돼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고 말해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제안이 유효함을 시사했다.

그는 또 “모든 문명국가(every civilized country)는 북한의 이번 발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히고 “북한이 6자회담을 보이콧하고 미사일을 쏘는 마당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business as usual) 행동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약.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할 순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모든 문명국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물론 각자 다른 조치들을 취할 것이다. 일본은 매주 입항하는 북한 상선에 대한 제재를, 한국은 대북 추가 원조 중단 및 장관급 회담의 초점을 바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미국이 (한국의 비료 지원 중단 등) 구체적인 조치들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한목소리로 보낼 필요가 있다.”

―중국 지도부에 ‘수일만이라도 대북 원유 지원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 같은 요청을 한 바 없다. 그러나 중국이 그동안 막대한 대북 원조와 함께 미사일 발사 자제를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왜 (이를 무시하고) 미사일을 발사했는지를 알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추가 미사일 발사가 있을 경우 또 다른 금융 제재나 남북 간 대화 중단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정적인 질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미사일 발사가 이미 있었고 발사된 미사일은 총 7발이었다. 모두를 겨냥한 것이다. 미국만의 우려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난해 마지막 6자회담 이후) 우리는 9개월 동안 기다렸다. 긴 시간이다. 그러나 북한이 보내온 답은 미사일 발사였다. 우리는 더는 앉아서 북한이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결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중국이 제안한 비공식 6자회담 전망은,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도 가능한가.

“미국은 참여할 것이라고 중국에 밝혔다. 어느 한쪽이 안 온다고 회담이 결렬돼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한국 정부가 예정대로 장관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는데 이에 대한 어떤 배경 설명을 들었나.

“한국 정부가 단계적으로 취할 입장 등을 놓고 매우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대북 원조 중단, 그리고 장관급회담의 주 의제로 미사일 및 6자회담을 채택하는 문제 등이다. 한미 양국 정부가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만족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북한은 이를 악용하려 할 것이다. 한국이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대북 교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6자회담을 보이콧하고 있는 마당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북한이 만일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힌다면 북-미 양자 접촉이 가능한가.

“특정 날짜에 복귀하기로 약속하지 않는 한 보이콧으로 간주할 것이다. 특정 날짜에 오겠다고 하면 실리적인 접근을 할 준비가 돼 있다.”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에 뭐가 탑재돼 있었나.

“대포동2호에 무엇이 탑재돼 있었는지는 모른다.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의 경우 어떤 것은 러시아에 좀 더 가깝게 떨어지긴 했지만 예정된 곳에 모두 떨어졌다. 북한은 이에 대해 만족스러워 할 것이라 본다. 지속적으로 발사했고 발사에 어려움이 있는 밤에 일을 진행시켰다. ‘어느 정도의 능력(some capacity)’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대포동 발사는 시험 발사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실패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분명 무언가를 배운다.”

―현재 미 행정부 내 온건, 강경파 중 누가 더 목소리가 높은가.

“비둘기는 없다. 현실주의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정리=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도쿄행 티켓 2장 준비했는데…’盧대통령과 면담 성사안돼▼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9일 출발 시간이 각각 다른 도쿄(東京)행 비행기 표 두 장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는 “일정이 바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됐을 때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였다. 매우 이례적인 ‘대비’여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힐 차관보와 노 대통령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침에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이미 만났는데…”라며 그 배경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힐 차관보는 이번 한미 양국 회동의 성과에 대해 “외교관은 (회동 전체 시간의) 50% 이상을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면서 한국 정부 내 분위기 파악에 주력했음을 시사했다. 그가 가장 길게 대화한 한국 정부 인사는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힐 차관보는 이날 서울 중구 정동 미국대사관저에서 CNN,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과 연쇄 인터뷰를 한 뒤 일본으로 떠났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가 ‘계속 이어지는 스케줄 때문에 경황이 없어 보인다’고 말을 건네자, 힐 차관보는 “여행 가방을 잃어버렸다. (다음 방문국인 일본에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 것을 빌려 가기로 했다. 북한이 (비밀을 캐내기 위해) 내 가방을 납치한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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