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 피습… 지방선거 刺傷

  • 입력 2006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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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20일 서울 신촌 유세 현장에 도착해 당 관계자들과 인사하는 모습을 범인 지모 씨가 연단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② 지 씨는 박 대표가 연단에 오르려는 순간 미리 준비해 간 예리한 문구용 커터로 박 대표의 오른쪽 뺨을 순식간에 베었다. ③ 박 대표가 얼굴을 감싸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동안에도 지 씨는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그대로 손에 들고 있다. 사진 제공 뉴시스 한나라당 노컷뉴스
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20일 서울 신촌 유세 현장에 도착해 당 관계자들과 인사하는 모습을 범인 지모 씨가 연단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② 지 씨는 박 대표가 연단에 오르려는 순간 미리 준비해 간 예리한 문구용 커터로 박 대표의 오른쪽 뺨을 순식간에 베었다. ③ 박 대표가 얼굴을 감싸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동안에도 지 씨는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그대로 손에 들고 있다. 사진 제공 뉴시스 한나라당 노컷뉴스
20일 신촌유세장서 50대 남자 문구용 커터 휘둘러

다른 50대는 연단아래서 난동… 與기간당원 밝혀져

5·31지방선거 과정에서 경악할 만한 정치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제1 야당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50대 남자의 습격으로 얼굴이 11cm가량 베이는 상처를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충격 속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면서도 이 사건이 초래할 정치적 파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사건의 정치적 배후에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 발생 및 수사=박 대표는 20일 오후 7시 20분경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현대백화점 신촌점 앞에서 같은 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지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을 오르던 중 지모(50) 씨가 휘두른 문구용 커터에 얼굴을 다쳐 인근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박 대표는 오른쪽 귀에서 입 부위까지 길이 11cm, 깊이 1∼3cm의 상처를 입었으며, 침샘 부위와 턱 근육 일부가 손상돼 2주 동안 정상적인 언어생활이 불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행히 칼이 경동맥과 경정맥 부위를 2∼3cm 비켜 갔고 안면신경이 손상되지 않아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또 유세 현장에서 지 씨가 박 대표를 습격하는 순간 연단 오른쪽에 있던 박모(54) 씨가 연단 아래에서 테이블과 마이크를 끌어내리고 의자를 들고 행패를 부리는 등 난동을 피웠다.

이들은 박 대표의 경호원과 한나라당 관계자들에게 곧바로 붙잡혀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지 씨는 경찰에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14년 넘게 실형을 살아 억울한 마음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는 폭행 상해 등 전과 8범으로 지난해 8월 청송보호감호소에서 가출소해 현재 보호관찰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박 씨는 유세장 인근에서 열린 초등학교 동창생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유세장을 찾아 소동을 피운 것으로 드러났으며 술에 취한 상태였다.

박 씨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인 2004년 3월부터 매월 4000원씩 당비를 납부한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이다.

한편 검찰과 경찰은 이날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승구 서울 서부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검경합동수사본부를 서울 서부지검에 설치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9시 45분경 지 씨와 박 씨를 서울서부지검에 넘겼다.

한나라 “배후의혹 규명” 열린우리 “선거테러 엄단”

▽정치권 움직임=한나라당은 20일 밤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에서 최고위원 비상 주요당직자 연석회의를 연 데 이어 21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이번 사건을 제1 야당 대표의 생명을 노린 ‘정치적 테러’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와 배후 규명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박 대표에게 문구용 커터를 휘두른 지 씨가 술을 마셨다고 당초 사실과 다른 언급을 한 이택순 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한편 철저한 진상조사를 위해 김학원 최고위원을 대표로 하는 ‘정치테러 진상조사단’을 구성키로 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21일 한명숙 국무총리와 정상명 검찰총장, 이 경찰청장을 항의 방문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입원 치료 중인 박 대표는 한나라당 관계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오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거는 차질 없이 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이계진 대변인이 전했다.

열린우리당도 이날 정동영 의장 주재로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긴급 선거대책위원회 회의를 열고 “이번 사건은 용납할 수 없는 선거 테러 행위”라면서 “선거 기간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사건 발생 직후 보좌진의 보고를 받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검경 합동수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또 한 총리는 21일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범인의 신분과 범행 목적, 동기 등 사건 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라고 당부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박대표 빠르게 회복…표정 밝아지고 정신적으로 안정"

입원 3일째인 박근혜 대표는 22일 오후 현재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에 따르면 박 대표는 수술 부위에 이물질 배출을 위해 박아넣는 가는 튜브인 '드레인'을 제거했고 앞으로 경과가 좋으면 23일 상처에 봉합된 실밥 일부를 제거할 예정이다.

경과를 봐서 3일 후에는 실밥을 완전히 빼낼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는 이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우유와 두유를 빨대로 조금 마신 뒤 수술 부위 소독 등 치료를 받았다.

이날 부터 조간신문을 읽고, 또 의자에 앉아 선거 상황과 이번 사건 대책 등에 관한 당무보고를 받기도 했다. 당무보고서를 전달받고는 "대전은요?"라며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고 유정복 대표 비서실장이 전했다.

특히 박 대표는 자신의 피습 관련 신문기사들을 보고 "국민들이 걱정해 주시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는 전날보다 표정이 훨씬 밝아졌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상태였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세브란스병원 박창일 병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박 대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고 마음 상태도 많이 안정된 것 같다"고 말하고 "수술 부위의 부기가 아직 빠지지 않았고 턱 근육과 침샘 부근에 입은 상처 때문에 조금이라도 입을 움직일 때 통증이 있어 박 대표가 당분간 면회와 식사는 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박 대표의 표정이 (입원) 첫날 침착했지만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며 "어제부터는 많이 안정된 표정이었고, 지금은 마음의 평온을 굉장히 빠르게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주사는 항생제만 맞고 있으며 진통제는 필요할 경우에만 조금 쓰고 있다"면서 "이는 본인 요구에 따른 것으로 통증은 자주 호소하지만 약을 많이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입원기간과 관련해 "1주일을 예상하고 있지만 침샘상처가 깨끗이 나을 때까지 두고봐야 하기 때문에 27일경 퇴원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병원장은 면회에 대해서는 "식사도 하고 원기를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돼 날짜는 현재로서는 뭐라 이야기할 수 없다. 1주일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아픈 내색을 하지 않던 박 대표는 의료진이 "아프냐"고 물으면 끄덕거리며 통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턱 부위에 압박 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박 대표는 현재 말을 많이 할 수 없는 상태로 지시사항이나 의견이 있으면 메모 형식으로 간단히 적어 당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는 문병 첫날인 20일 가볍게 읽을 책 몇 권을 병실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병원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3일째 병실을 찾았으며 허남식 부산시장 후보와 강재섭 박진 원희룡 의원, 맹형규 박세일 윤여준 전 의원 등도 다녀갔다.

박 대표의 모교인 서강대 박홍 이사장과 손병두 총장,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이사장, 동생인 지만씨 내외도 방문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다.

또 최규하 전 대통령이 비서를 통해 난을 보내 쾌유를 기원했고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 콘스탄틴 드라카키스 주한 그리스대사 등 외교사절들의 위문 난과 전문도 쇄도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싱가포르에서부터 전화 주문을 통해 장미와 카네이션으로 만든 커다란 꽃다발을 보냈다.

한편 당 소속 중앙위원 100여명은 세브란스병원 1층에서 "비인도적인 선거테러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며 10여분간 소동을 빚기도 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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