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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4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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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2대에서 내린 서울지방경찰청 수사2계 소속 경찰관 5, 6명이 승용차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 승용차의 트렁크에서 사과상자 2개가 발견됐다. 한 상자에 2억 원씩, 모두 4억 원이 들어 있었다. 한 상자의 무게는 22.7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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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용차의 운전자는 민주당 조재환(趙在煥·57) 사무총장이었다. 조 사무총장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조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8시 20분경 이 호텔에 도착해 지하 1층 양식당에서 12, 13, 14대 의원을 지낸 최낙도(崔洛道·68) 씨를 만났다. 최 씨는 5·31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전북 김제시장 선거에 출마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같은 층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후 9시 반경 최 씨는 조 사무총장에게 승용차 열쇠를 받아 고향 후배인 신모(51) 씨에게 줬다. 신 씨는 컨벤션센터 앞 주차장에서 자신의 승용차에 실려 있던 ‘돈 상자’를 조 사무총장의 승용차로 옮겼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17일 조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식사 약속을 했다. 이에 앞서 최 씨는 15일 신 씨에게 현금 4억 원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신 씨는 서울에서 지인들에게 수표와 채권으로 3억5500만 원을 빌린 뒤 자신이 운영하는 청소용역업체 직원들을 시켜 모두 1만 원권으로 바꿔 오도록 했다. 그는 고향인 김제시의 지인들에게 4500만 원을 더 빌렸다.
20일 오후 1시 반경 신 씨는 김제시 시민운동장 테니스장 근처 주차장에서 최 씨의 수행비서였던 문모(42) 씨와 함께 뭉칫돈을 사과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자신의 에쿠스 승용차에 실었다. 신 씨는 이날 오후 3시경 김제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최 씨를 만나 자신의 승용차로 상경했다.
이들이 상경할 즈음 ‘최 씨가 그랜드힐튼서울 호텔에서 조 사무총장을 만나 4억 원을 건넬 예정’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내용의 첩보가 경찰에 접수됐다.
오후 7시 반 최 씨가 로비로 들어서자 몇 명의 경찰관이 그를 바짝 쫓았다.
돈을 전달한 최 씨가 먼저 커피숍을 나왔다. 오후 9시 40분경 최 씨는 자신이 타고 온 신 씨의 승용차가 아닌 다른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호텔을 빠져나가려 했다. 경찰은 최 씨가 탄 승용차를 검문했으나 그를 체포하지는 않았다.
수사 실무자는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소란이 벌어지면 ‘큰일’을 그르칠 수 있어 참았다”고 말했다.
상황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조 사무총장은 최 씨가 떠난 뒤 약 10분이 지나 호텔을 나서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경찰에서 “트렁크에 선물을 싣는다고 해 열쇠를 건넸을 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조 사무총장에 대해 22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또 최 씨를 출국 금지했다. 최 씨는 사건 소식을 전해들은 뒤 잠적했다.
경찰은 “조 사무총장은 돈이 담긴 사과 상자를 건네받기 직전에 자신의 운전사를 퇴근하도록 해 은밀히 돈을 받으려는 의사가 있었다”면서 “제보자나 제보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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