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잘 아시면서…”

  • 입력 2005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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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장관은 어떤 사이일까. 오락가락하는 외교통상부의 대일(對日) 정책을 접하며 품게 된 의문이다. 미국 언론인 헤드릭 스미스가 ‘더 파워 게임’에서 소개한 일화가 정답으로 가는 실마리처럼 떠오른다.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982년. 윈저 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만난 레이건이 런던으로 가기 위해 전용 헬기 ‘마린 원(Marine One)’에 올랐다. 국무장관 알렉산더 헤이그도 대통령의 뒤를 따랐다. 바로 그때 세차게 돌기 시작한 프로펠러 바람에 헤이그의 모자가 벗겨져 하늘 높이 치솟았다. 헤이그가 “어어” 하는 사이 마린 원은 날기 시작했다. 국무장관을 자욱한 먼지 속에 남겨 둔 채.

미국 대통령과 각료의 권력 차이를 보여 주는 에피소드다. 오래전 얘기라고 하신다면 최근 사례가 또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밑에서 4년간 국무장관으로 일한 콜린 파월은 “아이스박스나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필요한 때만 꺼내 쓰는 존재”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대통령과 백악관 핵심 참모들의 힘에 밀려 ‘정부의 끝자락에서 종종 절망적으로, 그리고 자주 고립된 채 일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조크였다.

한국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미국에서는 각료들이 상원 인준을 거치니 알량하나마 ‘의회의 보증’이라는 배경에 기댈 수 있지만 한국의 장관들은 그야말로 대통령 한 사람에게 매달린 존재들이다. 국민은 이러쿵저러쿵 인물평을 할 수는 있으나 헌법으로 대통령에게 부여한 장관 임면권을 부정할 도리는 없다.

그렇기에 장관들이 단지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다거나 충성을 다한다고 비난하는 건 모순이다. 어느 장관이 “역량이 미치지 못할 때 대통령께서 명쾌한 지침을 주셔서 앞길을 가르쳐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납작 엎드려도 쯧쯧 혀를 차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하긴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과 장관, 청와대와 각 부처의 위계질서는 권력층의 내밀한 역학관계로 그쳐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힘이 장관을 흔들어 국정(國政)에 갈지자 흔적을 남기면 국가가 상처를 입는다.

외교부는 지난 주말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이 “야스쿠니신사 참배 얘기를 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밖에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망언을 하자 처음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틀 뒤 일과가 끝날 무렵 허둥지둥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논평을 냈다.

10월에도 비슷한 소동이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자 청와대와 외교부가 동시에 발끈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일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히며 앞장서자 외교부 장관은 예정됐던 자신의 방일 역시 “적절하지 않다”며 줄을 섰다. 이번에는 5일 뒤 정부 방침이 뒤집혀 외교부 장관의 방일이 발표됐고 APEC 정상회의 기간엔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초기 대응과 최종 결론을 다르게 만든 요인이 ‘청와대의 뜻’이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외교부의 한 관리는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잘 아시면서…”라며 얼버무렸다. ‘말없음표’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다 생략하고 하나만 꼽자면, 장관이 대통령의 수족이 되더라도 줏대 없는 나라라는 대외적 망신은 시키지 말길 바란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면서 어떻게 초지일관인 고이즈미를 변하게 한단 말인가.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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