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건은 정치인, 언론인 등의 민감한 통화 내용을 담고 있어 여야 간 치열한 정치 공방의 대상이 됐으며, 당시 국정원 측은 도청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25일 국정원과 검찰 등에 따르면 불법 감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최근 국정원 실무 직원 등 20여 명을 조사하면서 이 같은 진술을 받아냈다.
이들 국정원 직원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인 2000년 4·13 총선을 전후해 유선중계통신망 감청 장비인 ‘R-2’를 이용하여 일반 전화 및 이와 연결되는 휴대전화를 영장 없이 불법 감청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검찰 수사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국정원 직원들의 이 같은 진술은 김승규(金昇圭) 국정원장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김 원장은 9월 초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국정원 실무 직원들을 대상으로 불법 감청에 관한 과거의 진상을 소상히 적어 내도록 권유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진실을 숨김없이 고백하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직원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정원 직원 20여 명이 추석 연휴 전후에 자신이 관여한 불법 감청 사실을 자술서에 적어 국정원에 냈으며 이후 검찰에 출두해 이 같은 사실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실무 직원들은 특히 2002년 대선 전 정형근 의원 등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국정원의 도청 자료”라며 폭로한 30여 개 문건을 자신들이 작성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실무 직원들이 이같이 진술하자 당시 국정원에서 감청 업무를 담당했던 국장과 간부급 직원 2, 3명도 이 사실을 검찰에서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에 따라 조만간 이종찬(李鍾贊) 천용택(千容宅) 씨 등 전직 국정원장들을 소환해 불법 감청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와 도청 내용을 보고받았는지 등에 대해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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