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이젠 행동이 중요” 北-美 본격 줄다리기

  • 입력 2005년 9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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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자회담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뿐 아니라 6자회담을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다자안보 체제 구상을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절차가 이번 공동성명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합의된 북핵문제 해결 방안이 차질을 빚지 않고 이행될 경우 11월 초로 예정된 5차 6자회담에서는 다자안보 체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도 있다.

특히 6개국이 공동성명을 통해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공동 노력을 다짐했다”고 밝히고 ‘유엔헌장의 목적과 원칙 및 국제관계에서 인정된 규범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 것은 다자안보 체제 구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6개국 중 양자 간 또는 다자간에 안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유엔이 규정한 평화적 수단과 다른 나라에 대한 무력위협 금지 등의 절차에 따라 해결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정부의 안보 정책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통일부는 지난달 말 ‘참여정부 전반기의 대북정책 성과와 향후 전망’이라는 자료에서 “제4차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핵 폐기와 관련된 공동 문건을 채택해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확보하고, 향후 6자회담을 동북아 다자안보 체제로 전환해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채택된 공동성명엔 유엔헌장 준수 등의 절차를 어긴 국가에 대한 나머지 국가의 대응 방안이나 안보 문제 발생 시 6개국이 어떤 방식으로 논의를 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대목을 다자안보 체제 구상보다는 북핵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쪽에 비중을 둬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공동성명서 작성은 각국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담아내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다자안보 체제와 관련된 내용도 일부 포함됐지만 핵심은 북핵문제 해결 방안”이라고 말했다.

또 공동성명서 2항에서 6개국의 유엔헌장 준수 약속에 이어 곧바로 ‘북-미 간 상호 주권존중, 평화적 공존,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 이행에 대한 약속’을 밝힌 것도 무게가 북-미 간 양자관계에 실려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11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다시 열릴 5차 6자회담은 ‘북핵 폐기’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검증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때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강조하면서 남한 내 핵의 존재 여부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또 이번에 합의한 ‘경수로 제공 문제 논의’를 실행에 옮길 것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격적인 힘 겨루기는 이때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베이징=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은▼

국제사회의 양자 및 다자회의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 체결 이전의 문서는 의장요약(Chairman Summary), 의장성명(Chairman Statement), 공동보도문(Joint Press Release), 공동성명(Joint Statement) 등 크게 4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이 19일 북한 핵관련 2단계 4차 6자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은 가장 격이 높은 문서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정치적 도의적 구속력을 보장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방이 공동성명의 합의 내용을 어길 수도 있지만 이 경우 국제사회의 신뢰를 상실하는 것은 물론, 냉엄한 질책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과정에서 탄생한 포츠담선언이나 얄타회담 등도 공동성명의 성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성명의 한 단계 아래인 ‘공동보도문’은 참가국들의 합의 내용을 문건에 담았다는 측면에서는 공동성명과 비슷하지만 대(對)언론 발표용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구속력은 다소 떨어진다.

또 ‘의장성명’은 협상에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 결과를 남길 필요가 있을 때 나오는 것으로 정치적 구속력도 갖지 못한다. 2004년의 2차 북핵 6자회담과 같은 해 6월의 3차 6자회담 결과는 의장성명으로 발표됐었다.

‘의장요약’은 단순히 회의 결과를 요약하는 수준의 문서로 의장성명과 달리 의장의 의지도 들어가지 않은 문서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2005년 6자회담성명…원칙만 합의▼

1994년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미 간 기본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는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오른쪽)과 로버트 갈루치 미국 국무부 차관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를 ‘잘못된 협상’이라고 비판해 왔지만 이번 베이징 합의도 크게 보면 제네바 합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일 타결된 베이징 6자회담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은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 이래 11년 만에 나온 합의 문건이다. 그러나 그 성격과 내용, 형식 면에서 두 합의문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로선 북핵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던 제네바 합의와 달리 이번 베이징 합의는 본격 협상의 시작일 뿐이라는 게 차이점이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흑연감속 원자로를 포기하는 대신 경수로 2기를 건설해 주고 건설기간에 연료용 중유를 제공한다는 게 핵심 내용. 구체적인 시기(목표 시한 2003년)와 방법(국제 컨소시엄 구성), 향후 계획(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까지 명시한 마지막 단계의 합의문이었다.

반면 이번 베이징 합의는 포괄적이고 선언적인 원칙들만 주로 담고 있을 뿐 구체적인 실현 방법이나 일정은 계속 논의키로 한 ‘진행형’일 뿐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소극적 안전보장 약속, 평화체제 구축은 물론 북한이 주장해 온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까지 나열했지만 구체적인 시기나 방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베이징 합의는 10년여 전 제네바 합의의 연장선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제네바 합의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평화적인 방식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는 조건을 달았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불(不)위협 또는 불사용’을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공격(Attack) 또는 침공(Invade)할 의사가 없다’는 표현으로 바꿨다. 다만 일반적으로 국제협약에서 사용되는 ‘불가침(Non-Aggression)’이란 문구는 피했다. 또한 미국과 북한이 그동안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며 줄기차게 고집해 온 표현들이 타협을 통해 서로가 수용 가능한 다른 문구로 대체됐다.

우선 미국이 주장해 온 이른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 원칙 가운데 ‘검증 가능한(V)’이라는 표현만이 살아남았고 ‘폐기(D)’는 ‘포기(Abandonment)’로 바뀌었다.

북한 역시 미국의 ‘적대시 정책’ 종식을 외쳐 왔으나 북-미 간의 ‘상호 주권 존중과 평화적 공존’ 원칙을 확인하는 수준으로 대체됐다.

문건의 형식적인 면에선 두 합의문 모두 법적 구속력은 갖고 있지 않으나 참가국의 범위를 볼 때 그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양자합의였던 제네바 합의와 달리 6개국이 참가한 다자합의라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구속력은 더욱 강할 수도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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