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범진]노대통령의 지도력 위기

  • 입력 2005년 1월 9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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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대통령 시절에는 권력의 정통성 문제로 끊임없이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군부통치가 끝나면 우리에게 심각한 정치적 위기는 사라질 것으로 국민은 기대했다. 이러한 국민적 기대는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후에도 불행히도 실현되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말기 외환위기를 초래하여 지도력 위기에 빠졌다. 또 한 사람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집권 후 2명의 검찰총장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잇따른 불법행위로 국가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지는 등 지도력 위기를 보여 주었다.

두 김 전 대통령의 지도력 위기를 겪은 국민은 민주화 세력을 계승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1월 조사해 신년에 밝힌 국민의식조사에 의하면 노 대통령에 대해 국민의 51.5%가 혼란, 36.4%가 퇴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인상은 4·19혁명 후 잠시 집권했던 장면 총리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이쯤 되면 노 대통령은 심각한 지도력 위기에 빠져 있다고 봐야 한다. 상당기간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30% 안팎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노 대통령의 지도력 위기를 나타내는 징표이다.

▼국정수행 지지율 30%선▼

노 대통령이 지도력 위기에 빠진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국민의 희망과 기대를 외면하고 국정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과 통합’을 자신의 비전으로 제시했을 때 국민은 경제를 활성화해 국민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개혁을 추진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와 반대로 국민의 분열과 갈등을 증폭하는 쪽으로 개혁의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 결과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국민적 갈등과 대립은 광복 직후의 좌우익 대립 못지않게 국민통합에 위기를 가져 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민을 단결시켜 하나의 국가목표를 위해 국민적 에너지를 동원하는 능력은 국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주요 덕목이자 자질이다. 국민을 단결시키는 능력을 상실한 지도자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선거 때는 승리를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패싸움을 할 수 있으나 일단 집권자가 되면 반대자도 포용할 수 있는 중용의 정치를 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2년 동안 마치 선거가 계속되고 있는 듯 끊임없이 편 가르기 정치를 해 온 것이 지도력 위기를 불러온 것으로 봐야 한다.

다행히 노 대통령은 2005년 신년사에서 뒤늦게나마 상생과 연대의 정신 그리고 양보와 타협의 실천을 강조했다. 신년 하례식에서는 “새해에는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나 싸울 일은 없을 것 같다”면서 국정의 우선순위를 경제에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경제 살리기에 국정 우선순위를 두고 ‘다걸기(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한반도는 공산권이 무너진 뒤 유일하게 냉전체제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냉전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과는 냉전적 대결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면서 남쪽 내부에서 거꾸로 이념적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종의 국내적 냉전을 새로 시작하는 꼴이다.

▼새해부터 또 인사실책▼

지금 사회의 발전 속도는 1960, 70년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따라서 지금 5년 임기의 대통령은 과거의 대통령이 10년 집권하는 것과 맞먹는다고 봐야 한다. 그런 만큼 대통령이 취임 전반부터 지도력 위기에 빠질 경우 국가적 손실은 엄청나다. 안타깝게도 노 대통령은 새해 새 출발을 다짐하며 기용한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도덕성 문제로 사흘 만에 사퇴하는 인사 실책으로 지도력의 허점을 다시 보여 주었다. 지도력의 위기로 국가가 계속 표류해서는 안 된다. 희망의 새해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지도력이 조속히 회복되어야 한다.

박범진 건국대 초빙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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