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제성호]해외공관, 外交보다 內交?

  • 입력 2005년 1월 9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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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 항의성 e메일이 폭주했다. 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과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의 외교 활동비 유용 사건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다시 외교관들의 안일한 복무 자세가 누리꾼(네티즌)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지진해일 참사 직후 정부가 보여 준 대응은 비교적 체계적인 편이었다. 외교부에 사고수습본부를, 방콕에 현장지휘본부를 설치했다. 관계 부처들이 의료반과 수송용 항공기 등을 준비했고, 대한적십자사도 사후 수습에 참여했다. 이는 고 김선일 씨 사건 후 정부가 위기관리시스템을 보강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따뜻한’ 재외국민 보호와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는 부족했다. 간신히 살아 돌아온 여행객은 대부분 한국대사관이 자국민 보호에 소홀했다고 비난한다. 태국 측이 개설한 각국 임시 영사관 천막에 우리나라 직원만 자리에 없었다고도 한다. 나중에 영사가 사고 현장에 파견되긴 했지만 자리를 지키고 사망 실종자 수를 집계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발로 뛰고, 달려가 위로하고, 도움을 주는’ 인간적인 보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외교예산으로 한국인 접대▼

해외 긴급 위난인 이번 사태에 대한 정보수집 및 사후 대응 속도도 다른 피해국보다 훨씬 느렸다. 프랑스는 외무장관이 스리랑카를 찾았고, 일본은 기민하게 조사단을 파견하고 희생자 파악을 했다. 우리나라는 사건 발생 4일 후에야 당정 협의에 나섰고, 관련국들의 대응 수준을 지켜보다가 뒤늦게 외교부 차관과 특사를 사고 현장에 파견했다. 이런 굼뜬 대응은 눈치 보기와 의지 부족, 그리고 ‘면피성 자국민 보호’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재외 공관의 공금 유용 건도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사관이 외교 활동을 위해 배정된 예산을 한국인 접대 또는 직원 회식비로 사용하는 사례는 오랜 관행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외교관이 출세하려면 외교가 아니라 내교(內交)를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힘 있는 정치인이나 정부 관리의 주재국 방문 시 이들을 잘 접대해 좋은 관계를 만들어 둬야 한다는 것이다. 장래를 위해 보험을 들어 두는 ‘정치적 줄 대기’와 ‘도덕적 기강 해이’가 변칙과 탈법을 잉태하는 온상이 되고 있다. 또 외교는 적당히 현상 유지만 하고, 내교에 더 치중하는 무사안일이 자리 잡게 된다.

이번에 논란이 된 두 사례는 우리의 외교 활동과 외교관의 의식이 여전히 전근대적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또 수뇌부의 개혁 의지와 일부 제도의 개선만으로는 21세기형 ‘선진 외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교부의 대민 서비스 수준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외국에 공관을 설치하고 외교 활동을 하는 것은 국가 발전과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려 함에 있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을 홀대하는 외교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동안 외국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예산 및 인력 부족 탓을 하면서, 미흡한 대응을 변명하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마인드의 개혁이 없이는 예산과 인력이 늘어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외교활동비 감사 강화해야▼

외교부는 명예롭지 못한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뼈아픈 자성과 함께 한국 외교의 거듭남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더불어 자국민 보호 외교의 비중 확대, 영사 인력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외교활동비 사용의 투명성 제고 및 감사 기능 활성화, 외교관의 의식 개혁을 위한 재교육 확대, 부당한 인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는 인사고과 평가제도 개선 등을 시급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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