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저녁 귀국한 노 대통령은 오후 9시40분경 관저에서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와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을 만나 15분간 김 장관 발언 파문 등 국내 현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조만간 김 장관을 따로 만나 발언의 진의와 정책 구상 등을 직접 들을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김 장관의 ‘정치적 도발’로 보지는 않지만 정부의 주요정책에 대한 대국민 신뢰도에 큰 영향을 준 중대한 사안이란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김 장관, 왜 후퇴했나=해외 순방 중인 노 대통령이 직접 “김 장관의 대응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하자 김 장관 진영은 당혹스러워했다. ‘정책적 문제제기’가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게 김 장관측의 설명이다. 김 장관으로서는 ‘할 말’도 많았지만 일단은 지금 시점에서 노 대통령과 직접 대거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듯하다.
4대 법안 처리 등 정기국회 막바지에 여권 내부의 대오를 흐트러뜨리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점도 김 장관으로서는 부담이었다. 열린우리당 내 김 장관 우호세력들조차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는 강력한 진언을 계속했고, 4대 법안 처리가 잘못될 경우 그 책임을 김 장관이 뒤집어 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김 장관으로서는 ‘국민연금 관리의 주무부처는 보건복지부’라는 인식을 심어줬고, 연기금의 안정적 운용에 대한 부수적 장치들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소득도 있었다. 무엇보다 ‘할 말은 한다’는 대국민 이미지를 심은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김 장관은 이날 본보 기자와 만나 “오늘 유감 표명을 했지만 앞으로도 정책적 소신을 분명히 밝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장관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심기가 여전히 불편하다는 점에서 경질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은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났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겠지, 뭐…”라고 답변했다.
▽권력투쟁의 그림자=이번 사태로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親盧)’ 그룹과 김 장관이 주축인 ‘재야파’간 간극이 분명히 드러났다. 김 장관의 발언 직후 친노 전위대격인 명계남(明桂男)씨가 김 장관을 비판하고 나섰고, 이를 신호탄으로 친노 네티즌들의 ‘GT(김근태) 공세’가 이어졌다.
노 대통령과 김 장관의 관계가 ‘화학적 결합’에까지 이르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셈. 두 사람의 관계는 2002년 대선 경선과정에서의 갈등과 후보 결정 이후 김 장관의 ‘뒤늦은 합류’ 때문에 앙금이 생겼다. 결국 노 대통령 당선 뒤 몇 차례 만남을 통해 간신히 봉합됐던 상처가 이번에 다시 노출된 셈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