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6월의 혼란

  • 입력 2004년 6월 1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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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기묘한 달이다.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6·25전쟁이 시작됐고, 최근의 기억으로는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은 2000년 6월이 떠오른다. 1999년과 2002년 교전이 벌어졌던 서해에서는 사흘 전 남북 함정 사이에 역사적인 무선교신이 이뤄졌다. 남과 북 사이에 전쟁과 평화, 갈등과 화해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달이 6월이다. 엊그제 있었던 남과 북의 만남도 ‘6월의 혼란’을 절감케 한다. 북한의 일개 대남사업기구인 조선아태평화위원회의 이종혁 부위원장이 한꺼번에 남한의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을 만나는 환대를 받았다. 이 부위원장은 보통 200여명을 열거하는 권력서열 명단에 지금까지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런 북측 인사와 한 테이블에 앉아 환담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남북 사이에는 의전도 없나▼

이것이 우리의 손님 접대 방식이라며 웃고 넘길 수는 없다. 남과 북의 만남에도 의전(儀典)과 격식이 있어야 한다. 북한이 우리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 부위원장 정도가 내려와도 못 만날 사람이 없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굳이 서울에 오려고 할까. 이쯤 되면 혼란이 아니라 절망을 느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축사를 한 국제학술토론회에서는 북한 대표의 ‘남한 질책’과 ‘미국 비난’이 쏟아졌다. 남한의 한 TV는 그런 ‘불온 발언’을 생중계로 국민에게 전했다. 여기가 서울인가, 평양인가. 일찍 찾아온 더위만큼이나 혼란스럽다.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 앞장섰으니 다른 사람 탓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긴 요즘의 혼란은 위아래를 가리지 않는다. 일부 국민의 이름으로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라디오 ‘자유북한방송(www.freenk.net)’에 대한 유무형의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주 자유북한방송에 찾아가 “남북간 화해협력 무드가 고조되고 있는데 이에 역행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며 방송 중단을 요구한 사람들은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라는 이름의 단체 소속이었다.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을 ‘비방’으로 몰아치는 논리가 아연할 따름이다. 백보 천보를 양보한다 해도 민주국가에서 남북 화해를 빙자해 표현의 자유를 막는 행동까지 용납될 수는 없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전화와 e메일로 쏟아지는 협박 때문에 불안하기는 하지만 보람을 느낀다”면서 “요즘에는 북한 주민보다 남한 국민에게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생각하면 혼란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 용천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많은 국민이 정성껏 성금을 모아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냈다. 그런데도 북한 관영언론은 미국 일본을 포함해 구호물자를 보낸 28개국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한국은 빼버렸다. 675만2000달러어치의 국제사회 지원보다 6배가 넘는 4200만달러어치의 물자를 보낸 우리 정부와 적십자사 민간단체는 북한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

▼남한 국민 교육이 시급하다▼

요즘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중국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탈북 소녀 3명을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데려오는 비용이 1200만원이라고 한다. 용천돕기 같은 바람이 분다면 그야말로 푼돈이다. 고맙다는 말을 못 들어도 북한을 돕자면 순식간에 돈이 모이는데 탈북 소녀 3명을 구하는 자금 모으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이런 식으로 혼란이 계속되다가는 나라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오죽하면 타임지가 ‘김 위원장은 웃고 있다’는 기사를 썼을까. 말없는 다수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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