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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26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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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어귀에 있는 평북 용천은 1945년 ‘반공학생 의거’가 일어난 신의주와 함께 반체제 기질이 강한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평안북도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와 주민의 반골적인 기질은 일제강점기에 용천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고 씌어 있다. 3·1운동 때는 28차례 시위가 일어나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554명이 체포됐다. 광복군 참모장을 지낸 김홍일 장군,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 ‘씨ㅱ의 소리’ 발행인 함석헌 선생이 용천 출신이다.
▷용천은 일찍이 기독교와 개화문명을 받아들여 1928년 평북 노회(老會)에서 분리돼 이 군에 세워진 교회만으로 용천 노회가 조직됐을 정도로 기독교가 번성했다. 장 전 총장도 압록강변의 매섭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어머니를 따라 새벽기도를 다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1911년에는 ‘105인 사건’으로 많은 목사와 평신도들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교회가 파괴되고 목회자들이 구속되는 수난을 겪으며 수많은 기독교인이 월남했다. 부산복음병원장을 지낸 장기려 박사, 차병원 설립자 차경섭옹도 용천 출신이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용천 열차 폭발 사고가 정치적 사건일 가능성이 없느냐”는 질문에 “지역으로 봐서 그런 추정을 하는 것 같은데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탄 열차가 용천을 지나간 지 몇 시간 만에 폭발사고가 터졌으니 온갖 추측이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강한 기질의 용천 사람들이 재난을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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