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틀이 바뀐다]<上>당선자 이념성향

  • 입력 2004년 4월 1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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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의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정치기반을 갖고 있나. 동아일보와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팀은 아시아재단 후원으로 17대 당선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서면 및 대면 인터뷰를 통해 17대 국회의원들의 뿌리와 이념 성향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향후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조망해 보는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16일 본보와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공동조사에서 드러난 17대 국회의원들의 이념성향은 보수정당이 지배해온 국회가 이제 보-혁 성향 의원들이 균형을 갖춘 경쟁체제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4·15 총선 결과 부분적인 지역주의 잔존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이념성향이 일치하는 정당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음도 확인돼 기존의 포괄정당에서 벗어나는 흐름이 구체화됐다. 이에 따라 이들이 원내에 진출한 뒤 정당과 자신의 이념 노선에 바탕한 정책을 비교적 일관되게 추구하는 진일보한 정책경쟁을 벌일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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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성향에 따른 정책방향=실제 원내 제1당이 된 열린우리당 소속 당선자들은 평균적으로 진보에 가까운 중도성향을, 원내 제2당이 된 한나라당 당선자들은 평균적으로 중도보수를 이념적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할 수 있는 주요 기준 중 하나인 국가보안법 개정과 관련, 전체 당선자의 67.6%가 ‘개정 또는 대체’ 의견을 제시했고,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7.1%,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5.3%였다.

열린우리당 의원의 경우 당선자의 70%가 개정 또는 대체에, 28.3%가 폐지에 찬성한 반면 유지하자는 의견은 1.6%에 그쳤다. 한나라당의 경우 64.4%가 개정 또는 대체에, 35.5%가 유지에 찬성했다.

북한 핵문제 해법과 관련해서는 전체적으로 88.3%가 북한경제를 지원하는 방향에 찬성했고, 대북압박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는 의견은 11.7%였다. 핵보유를 인정하자는 의견은 한 명도 없었다. 열린우리당은 100%가 경제지원을 선호한 반면 한나라당은 75.6%가 경제지원을, 24.4%가 대북압박을 주장했다.

‘한국의 가장 중요한 협력국가는 어느 나라로 삼아야 하느냐’는 항목에는 미국이 52.3%, 중국 39.4%, 일본 0.9%로 답변했다. 열린우리당은 50%가 중국을 1번으로, 41.7%가 미국을 꼽은 반면 한나라당은 미국을 꼽은 이가 66.7%로 가장 많고 중국을 꼽은 이는 26.7%에 불과했다.

▽당선자들의 이념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기반=당선자들의 직업적 분포 중 가장 특징적인 점은 시민단체 출신들의 대거 당선이다.

당선자들의 정치입문 전 직업을 분석한 결과 비교적 진보성향이 강한 시민단체에서 일했던 당선자의 비율이 14.8%에 이르렀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경우 29명의 당선자가 시민단체 출신들로서 22.5%를 차지했다. 당선자들의 직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업은 법조인으로서 21.6%를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공무원 17.4%, 시민단체 14.8%, 언론계와 교육계 각각 11.4% 등으로 조사됐다. 보통 법조인과 공무원은 보수적 성향을 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졸이상의 학력을 가진 당선자가 97.9%를 차지하고 있어서 고학력 국회의 전통은 유지되고 있다. 학교별로는 서울대 출신이 39.6%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로 고려대 10.4%, 연세대 7.5%, 성균관대 5.4% 등으로 나타났다.

당선자중 자신이 ‘국제적 경험을 가졌다’고 응답한 당선자의 비율은 53.1%였고, 상대적으로 적은 국제적 경험을 가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46.9%였다. 당별로는 한나라당 당선자 중 64.1%가, 열린우리당 당선자 중 44.6%가 자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국제적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조사·분석 참여 교수=김석우(서울시립대), 류상영(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전용주(동의대), 김의성 교수(연세대 국제학대학원)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386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들은 학생시절 진보 이념과 치열한 토론 문화를 배운 본격적인 ‘민주화 세대’로서 국회의 모습을 크게 바꾸고, 각종 진보개혁 입법을 통해 정치권에 ‘개혁 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은 1988년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 낸 1987년 6월항쟁 이전의 시기와 이후의 시기로 크게 나눠 볼 수 있다.

이념적 성향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전신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사상적 근간을 이루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NL) 계열과 민중민주주의(PD) 계열로 나뉜다. PD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가 제헌의회파(CA) 계열. 80년대 전반기 학생운동의 주역은 대부분 CA 혹은 PD 계열로 볼 수 있고, 87년 이후 전대협 주축 세력은 대부분 NL 계열로 분류된다.

▽87년 6월항쟁 이전 세대=70년대 말∼80년대 초에 활약했던 학생운동권 세대에서는 CA 계열의 리더였던 열린우리당 민병두(閔丙두) 총선기획단장이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다. 재선에 성공한 열린우리당 신계륜(申溪輪) 의원은 80년 ‘서울의 봄’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 한나라당 심재철(沈在哲)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심 의원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80년대 전반기에 학생운동을 이끈 리더로는 이번에 재선 고지를 밟은 김영춘(金榮春·고려대 총학생회장) 송영길(宋永吉·연세대 총학생회장) 의원과 영등포갑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고진화(高鎭和·성균관대 총학생회장)씨 등이 꼽힌다. 이들의 이념은 CA 혹은 PD 계열에 가까웠다.

또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열린우리당 강기정(姜琪正·광주 북갑) 당선자는 90년대 초까지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고, 이상수(李相洙) 전 의원 보좌관으로 서울 중랑갑에서 당선된 이화영(李華泳) 당선자는 노동운동으로 유명하다. 이 밖에 강원도에서 당선된 이광재(李光宰) 전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은 연세대 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87년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들의 이념적 성향도 자본주의의 폐해를 강조하며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옹호했던 PD 계열에 가깝다.

▽전대협 세대=이번 총선에선 모두 10명의 전대협 간부 출신이 당선됐다. 동조 세력을 규합하면 ‘독자적인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할 수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 87년 6·10항쟁 이후 만들어진 전대협은 임수경 방북 등을 주도하며 우리 사회에 ‘통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이념적 토대는 NL.

서울 구로갑의 열린우리당 이인영(李仁榮) 당선자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다. 99년 국민회의 신당 창당 발기인으로 정치에 뛰어든 지 5년 만에 금배지를 달았다. 역시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열린우리당 오영식(吳泳食·서울 강북갑) 당선자는 전대협 2기 의장, 재선에 성공한 임종석(任鍾晳) 의원은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3기 의장이었다.

서울 서대문갑에서 대학 선배인 한나라당 이성헌(李性憲) 의원과 피 말리는 접전 끝에 당선된 열린우리당 우상호(禹相虎) 당선자는 전대협 1기 부의장이었다. 그는 87년 6월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할 때 옆에서 부축했던 장본인. 열린우리당 김태년(金太年·경기 성남 수정) 당선자는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간부였다.

이 밖에 2기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을 지낸 백원우(白元宇) 전 대통령행정관은 경기 시흥갑에서 당선됐다. 또 동국대 학생회장 출신인 열린우리당 최재성(崔宰誠·경기 남양주갑) 이철우(李哲禹·경기 연천-포천) 정청래(鄭淸來·서울 마포을) 당선자도 전대협 간부 출신이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80년대 운동권 노선▼

▽NL=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주장한 그룹. 민족해방(NL)을 강조한다는 점 때문에 NL로 통칭된다.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사회변혁을 모색하던 학생운동 그룹 내에서 등장한 좌파이론으로 미국을 ‘제국주의’로, 남한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이에 저항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PD=민중민주주의론을 주장한 그룹.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한국 사회의 폐해는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나온다는 논리를 주장한 그룹. 자본가들의 노동자 착취,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 등을 주장했다. 노동세력과의 연대 등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문제에 접근했다.

▽CA=제헌의회파. 강경한 좌파이론으로 민중이 주도하는 ‘민중 국회’를 만들고 항구적으로는 민중이 주인 되는 국가를 건설하자고 주장했던 그룹.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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