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 국제질서 화두는 ‘협력’▼
그의 다짐이 실현되길 바란다. 하지만 현재 민족주의의 외피를 입고 달려오는 파괴적인 좌파 이데올로기가 ‘친북반미 자주외교’를 외치면서 사회 분위기를 휘몰아가는 상황에서 실용주의적 실리외교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자주외교의 개념과 관련해 청와대측은 “국익을 추구하는 방식을 스스로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국가안보회의(NSC)측은 자주외교를 ‘균형적 실용외교’로 설명하면서 ‘균형외교’란 가치, 국익, 동맹과 다자협력, 세계화와 지역화, 국가간의 수평적 협력을 의미하고 ‘실용주의 외교’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설정된 국가안보 목표 등을 달성하기 위한 전술 선택에서 유연성을 발휘한다는 뜻이라고 말해 왔다.
이와 같은 설명은 당연한 것이어서 반론을 제기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 세계화와 개방의 국가평등시대에 국가 이익의 개념과 수행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나라의 힘의 강약과 지정학적, 전략적 위치 때문에 적응 태세를 탄력적으로 조율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주’라는 19세기적인 역사적 잔재를 정치동원적인 좌파 이데올로기의 용어로 바꾸어 구사하면서 나라의 외교정책을 ‘동맹외교’와 ‘자주외교’로 대립시켜 전자를 부도덕하고 비민족적인 것으로 매도해서야 되겠는가.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자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아마도 북한과 우리뿐일 것이다.
실상 탈냉전시대로 지칭되는 21세기 국제질서의 화두는 ‘협력’이란 용어로 막을 올렸다. 1989년 12월 24일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지중해의 몰타 섬에서 만나 냉전체제의 종식을 선언하고 21세기를 ‘협력의 시대’로 선언했다. 탈냉전시대의 중심 국제정책인 ‘포괄적 안보’, ‘공동안보’, ‘상호안보’, ‘예방안보(외교)’ 등은 국제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어떤 나라도 대외적인 ‘자주’의 포기를 강요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주는 실리로 이어져야 하고 실력이 뒷받침될 때에만 가능하다.
자주외교가 자학(自虐)적인 ‘집단적 방어기제’로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열린 자주’, ‘열린 민족주의’의 자세가 요청된다. 21세기의 한국은 작은 약소 열등국가가 아니다. 국토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20위권, 국민총생산 규모 12∼15위, 교역 규모 12∼13위, 기술 수준 10∼12위, 대외무역 비중이 73%에 이르는 중강국이다. 이제 역사적으로 형성된 ‘작은 나라, 약소국, 열등국, 피압박·피지배국 콤플렉스’를 벗어날 때가 됐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래 150년 동안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났다.
▼상호활용이 상호이익 지름길 ▼
역사의 경험으로 볼 때 지구상에서 다른 나라를 돕기만 하는 순수하게 이타적인 나라는 하나도 없다. 경쟁 세계에서는 상호 활용이 상호 이익의 첩경이다. 미국이 항상 잘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미국만한 우방과 동맹국을 가져본 적이 없다. 미국을 대체할 만한 우방도 없다. 미국과의 협력이 결국은 한국 외교의 자주성을 증진시키는 현실적 선택이다.
따라서 동맹외교의 부활이 실용주의 외교의 최우선 과제다. ‘국민외교’가 특수한 집단의 집단이기주의나 ‘폭민(暴民)적’ 대중인기영합주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평형성을 유지해야 한다. 인기가 없어도 바른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이고 리더십이다.
류재갑 경기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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