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재호/참여의 깃발을 내려야 하나

  • 입력 2003년 9월 30일 18시 31분


코멘트
우리 대통령들은 정권에 타이틀 붙이기를 좋아한다.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하면 될 것을 굳이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라는 타이틀을 붙인다. 아마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런 가치가 여전히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니 후진성의 표지로 보이기도 한다. 선진국 정부치고 이런 유의 타이틀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참여 정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는데도 ‘참여 정부’다. 노 대통령 역시 민주주의의 여러 덕목 중 참여가 가장 중요하니 참여의 수준과 내용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참여’, 좋은 말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의 정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누지만 대개는 참여 민주주의를 최상위에 놓는다. 국민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가 많을수록 민주주의의 원형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적 의미의 참여 민주주의에는 선진국형의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고 전자민주주의 시대에도 대비하자는 각오와 의지도 담겨 있다.

지난 7개월 동안 우리의 ‘참여’는 어땠을까. 인터넷으로 장관 후보를 추천받고, 청와대에는 처음으로 국민참여수석비서관이라는 자리까지 만들었으니까 질적 양적으로 성장한 것일까.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참여의 기반을 상당부분 잠식했다는 편이 더 정확한 평가다. ‘코드’라는 기이한 잣대로 사회를 마구 쑤셔대 코드가 일치하지 않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정권에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이 한 예다. 참여와 토론을 외쳤지만 주요 국책사업 하나 제때 추진된 것이 없다.

끝내는 참여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까지 무당적(無黨籍) 상태로 나앉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당적 문제가 소모적 정치공세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지만 그 이면에 정치에 대한 대통령의 염증이 짙게 배어 있다. 이른바 참여 정부 아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참여 정부를 기대했다면 적어도 대통령만큼은 편 가르기식 행태를 삼갔어야 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도 지적했지만 우리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보는 인식부터 바꿨어야 했다. 참여란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과 관용의 언어이지 누구를 배척하고 따돌리는 언어가 아니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처지가 금방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신당도 당장 입당을 환영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대통령이 고립무원 상태라면 ‘참여의 깃발’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릴지 걱정이다.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직접 협조를 구하겠다고 하지만 자칫하면 대중영합주의자라는 오명만 얻게 될까봐 두렵다.

한 국가가 탈(脫)권위주의와 지식정보시대로 진입하게 되면 구성원들의 정치참여 욕구는 그만큼 증가한다. 분출하는 욕구를 잘 구비된 도관(導管)을 통해 수렴한 후 정책으로 바꿔 주는 것이 정부의 주된 책무가 된다. 참여정부 또한 그렇다. 이 정권이 그런 일을 해 보기도 전에 참여의 깃발을 내려야 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아무리 자업자득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이재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