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南北말 “통역해야 할 판” 어문교열기자協 北교과서 분석

  • 입력 2003년 9월 15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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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남이는 고기를 잡느라고 물참봉이 된 바지를 억이 막혀 내려다보았다.

“야, 너 물고기구 뭐구 어서 바지나 짜 입어라.”

“일 없어. 난 오늘 물고기를 꼭 잡아야 해. 못 잡으면 꽝포쟁이가 되거던….”

북한 고등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의 한 대목이다.

남한식 표현을 쓴다면 ‘물참봉’은 ‘물에 흠뻑 젖은’으로, ‘억이 막혀’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로 고쳐야 한다. 또 ‘일 없어’는 ‘괜찮아’, ‘꽝포쟁이’는 ‘허풍쟁이’라는 뜻이다.

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남북한의 언어가 이질화해 번역이 필요할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이미경(李美卿·민주) 의원은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남북어문교류위원회와 공동으로 4월부터 8월 말까지 북한 초중고교에서 사용하는 국어 음악 수학 지리 화학 역사 도덕 등 7개 과목 교과서 9권을 분석한 결과 문법 한자어 외래어 전문용어 등에서 남북간의 언어 차이가 매우 컸다고 15일 밝혔다.

전등알(백열전구) 세평방정리(피타고라스의 정리) 불타기반응(연소반응) 녀성고음(소프라노) 산줄기(산맥) 등으로 남한과 사뭇 다른 표현들이 북한 교과서에 쓰이고 있었다.

주무랑마봉(에베레스트산), 탕겐스(탄젠트·tangent), 휘거(피겨스케이팅), 뽈스까(폴란드), 깔리만딴섬(보르네오섬), 마쟈르(헝가리) 등 외래어 표기법의 차이도 컸다.

북한 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말의 용법을 왜곡한 사례도 많았다.

우리말의 존칭 조사인 ‘○○께서는’을 복수에 사용할 때 ‘A와 B께서는’과 같이 뒷말에만 붙이는 게 자연스럽지만 북한에서는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께서는’처럼 존칭 조사를 중복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이 의원과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는 16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남북한 언어차이와 통일언어 교육의 실태’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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