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비밀송금 特檢수사]민주, 방심이냐 방관이냐

  • 입력 2003년 2월 26일 18시 41분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가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을 너무 몰랐다.”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박 의장이 한나라당 의원만 참석한 가운데 ‘대북 비밀송금 특검 법안’을 처리하자, 국회의 한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이날 본회의장에선 고건(高建) 국무총리후보자 임명동의안과 특검 법안의 처리 순서 등을 놓고 민주당과 한나라당 그리고 박 의장간에 치열한 논리 싸움이 계속됐다.

오후 2시 반 시작된 본회의에서 민주당은 ‘릴레이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민족의 운명이 걸린 대북 문제에 특검제를 도입하는 것은 부당하며, 국회 관행상 인사 관련 사안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에 앞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20명이든 30명이든 의사진행발언을 계속하면 정회(停會)될 것이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민주당 의원 11명이 발언하는 동안 단 2명만 발언하고 당초 추가 신청자 6명은 아예 발언 자체를 취소하는 ‘방관 전략’을 폈다. 박 의장은 오후 3시55분경 “의사진행발언은 충분히 들었다. 양당 총무와 각 당에 30분간 시간을 주고 그 다음엔 국회법에 따라 의사 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말하고 정회를 선포했다.

민주당의 전략대로 ‘정회’는 됐지만 민주당이 재차 의총을 하고 있던 오후 4시 반경 박 의장은 자신이 밝힌 대로 본회의를 다시 열었다.

이때까지도 민주당 의총장에선 “특검은 최악이다. 정균환 총무가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에게 ‘검찰 수사’를 역제의하라” “한나라당이 ‘총리 인준안을 먼저 처리하겠다’는 요구를 해올 때까지 본회의장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식의 다소 한가한 발언이 계속됐다.

그러나 박 의장은 한나라당과 자민련 의원만 참석한 가운데 특검 법안 수정안에 대한 제안 설명을 듣고 곧바로 법안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오후 4시53분 이 소식이 민주당 의총장에 전해지자 정 총무는 “특검안을 단독 처리한 한나라당의 횡포와 박 의장의 독단을 규탄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대로 두면 총리 인준 동의안도 부결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김근태(金槿泰) 심재권(沈載權) 의원 등이 나서서 “의회주의를 파괴한 한나라당의 ‘다수의 횡포’를 규탄해야지, 지금 총리 인준 문제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고 반대했고 의총은 갑론을박 끝에 끝나고 말았다. 특검안 통과 직후 국회 주변에서는 민주당이 법안 통과를 방치한 것은 이 문제를 놓고 여야 대치가 장기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의중이 당 지도부에 전달된 결과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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