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北송금 先국회해결' 제시]DJ주장과 비슷…사전조율 관측도

  • 입력 2003년 2월 3일 18시 46분


코멘트
현대상선의 2235억원 대북 비밀송금 의혹에 대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검찰수사’라는 기존 입장을 바꿔 ‘국회에서 해결하자’고 강조하고 나선 것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의 관계-대북 관계-한나라당의 입장을 모두 의식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입장은 김 대통령의 ‘사법심사는 적절하지 않다’는 언급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거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낳고 있다.

▽곤혹스러운 DJ와의 관계=노 당선자가 ‘검찰수사’에서 ‘정치적 해결’로 방향을 급선회한 데는 현직 대통령이 간여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안의 민감성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통령이 아닌 당선자 신분으로 청와대 입장을 감안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야당의 공세도 피하기 어려운 처지인 만큼 ‘뜨거운 감자’인 이 문제를 아예 국회로 떠넘기는 선택을 한 것이란 얘기다.

신계륜(申溪輪) 인사특보가 “과도기적인 상황의 노 당선자가 직접 말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며 “검찰조사든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정쟁대상이므로 사안의 성격상 국회가 조사주체와 범위를 정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느냐”는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대북 관계 의식=노 당선자가 내세운 ‘국익’은 결국 앞으로의 대북 관계를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노 당선자측의 한 핵심 측근은 “(국회에서 해결하자는 발언에는) 북핵 문제 등 예민한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당선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며 “진실 규명 못지않게 사후를 염두에 두는 해결방안이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내정자가 3일 “북한 아태평화위 성명에서 보듯이 북한은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경우 실제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현실적으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 설득카드=한나라당은 검찰수사 관철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서 ‘국회에서 해결하자’는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내정자가 “대통령 언급만으로는 야당도 국민도 설득하기 어렵다”면서 “현대든 정부든 관련 당사자들이 국회에 나와 야당의 설득을 구하고 그렇지 못하면 다른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야당을 배려하는 발언을 한 것도 이런 한나라당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노 당선자측은 여러 채널을 동원해 조만간 한나라당 설득작업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노 당선자의 발언은 국민감정이나 야당을 의식, 청와대를 향해서는 임기내에 ‘국익을 위한 행위였다는 고백을 하라’는 압박을 가하면서 한나라당을 향해서는 ‘국익 차원에서 초당적 협력을 하자’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노 당선자의 이같은 해법은 검찰수사라는 정공법을 포기한 채 조사대상이 될지도 모를 청와대측을 너무 배려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노 당선자가 상황에 따라 ‘말바꾸기를 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국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긴 했으나 송금의혹을 모두 밝히는 것과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덮고 넘어가는 것 중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