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가망신 시범케이스를 보여야

  • 입력 2003년 2월 3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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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조각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하도록 하겠다"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공개 선언'을 무색하게 하는 물밑 인사로비와 청탁이 당선자 주변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

노 당선자의 한 측근은 최근 설 연휴를 앞두고 자택을 찾아왔던 입각후보자 A씨가 두고 간 화분 속에서 수 천 만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외출중이어서 A씨를 직접 만나지 못한 이 측근은 부인을 크게 질책한 뒤 돈을 곧바로 돌려주었다는 후문이다.

인사로비의 한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을 직간접적으로 해명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경제부처 장관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B씨는 설 연휴 기간 중 인수위 고위 관계자에게 지인을 보내 최근 언론에 지적되는 자신의 '약점'을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몇몇 장관 후보들은 자신의 정책구상을 담은 보고서를 노 당선자가 읽어보도록 해 달라며 인수위 관계자들에게 건넨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관계자는 "주로 경제장관 후보들이 직접 작성한 정책 보고서를 전달해줄 것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띰했다.

자신을 장관으로 뽑아달라는 '대담한' 청탁도 적지 않다. 인수위의 다른 관계자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C씨가 '나를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발탁해 달라. 곤란하다면 우리 형을 통일부 장관에 임명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또 인수위 출범직후에는 인수위원들을 상대로 "(발탁된다면) 사례하겠다"며 고위직 발탁을 청탁하며 노골적으로 접근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인수위 주변에선 노 당선자가 '패가망신' 발언을 한 뒤 파문이 일자 '내부 단속용'이라고 한발 물러서는 바람에 이 발언이 의례적인 수사(修辭)로 받아들여지면서 효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인수위는 인사청탁 방지책을 마련하라는 당선자의 지시를 받았지만 이는 새 정부 출범 후에 논의할 사안으로 분류해 놓고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는 손도 못대고 있는 형편이다. 윤성식(尹聖植) 인수위원은 "인사청탁은 워낙 뿌리깊고 광범위한 사안이라 행정개혁위원회가 장기과제로 다루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노 당선자는 이날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최근 인사발표 이후 혼선이 생기고, 상심하거나 기분 나쁠 수 있지만 동요하지 말아달라"고 인수위원 다독거리기에 나섰다. 이 발언은 27일 발표된 대통령비서실 국민참여 수석비서관 자리에 박주현(朴珠賢) 변호사가 외부에서 발탁된 뒤 인수위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불만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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