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특파원이 본 한국대선 下]美 'IHT' 도널드 커크

  • 입력 2002년 12월 16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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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선거 취재에 나선 도널드 커크 특파원. - 강병기기자
8일 선거 취재에 나선 도널드 커크 특파원. - 강병기기자
나는 1972년 시카고 트리뷴지의 도쿄특파원 시절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이번 대선을 합하면 한국의 민주화 이후에 치러진 모든 대통령 선거, 즉 87년부터 4차례의 대선을 모두 지켜보는 셈이 된다.

이번 대선은 후보들이 각기 다른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고, 각기 다른 사회적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대선과는 확실히 다르다. 2002년의 후보들은 북한 문제나 경제구조조정 등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각자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 ‘정책 대결’이 펼쳐진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그동안 한국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사투리를 먼저 파악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선거 취재에서 유세장에 모인 청중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지역’을 알고 들어야 좀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지역 정서도 이번에는 이전의 선거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나는 정몽준(鄭夢準) 후보가 물러남에 따라 대선 판도가 ‘우’와 ‘좌’의 대결 양상을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둘 다 조금씩 ‘가운데’로 다가선 감이 있지만, 이 후보가 노 후보보다 시장원리에 따른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우’와 ‘좌’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해 정확한 용어는 아니지만.

노 후보와 정 후보의 단일화는 이번 선거의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기자 입장에서 볼 때 선거가 훨씬 흥미로워졌음은 물론이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도 매우 어려워졌다.

아마도 노-정 두 후보는 둘이 한꺼번에 나서면 보수표 기반이 확고한 이 후보를 이길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 출신의 노 후보와 대기업 오너 가문의 정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한 것을 다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노 후보가 당선하면 정 후보도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한미관계가, 노 후보가 당선하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노 후보가 한미관계를 악화시키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는 미국의 강경한 대북 정책과는 입장을 달리하지만, 대북관계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상호주의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 현안들을 취재하다 보면 미국에 비해 정당 내의 위계 질서 등이 더 권위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많은 조직이 완전히 ‘민주적인 프로세스’를 체화한 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 한국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월드컵 현상’이었다. 월드컵은 한국의 국가 위상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이것이 곧바로 정치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후보들의 선전과 당선자의 훌륭한 국정 운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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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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