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문흥수/대통령 사면권 행사 신중해야

  • 입력 2002년 5월 22일 18시 41분


국민 일반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특히 매스컴 등에서 역사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의 구속과 관련한 보도들로 연일 매스컴이 떠들썩하다. 대통령을 제왕과 동일시하고 그 아들을 왕자처럼 착각하는 수준에서는 당연한 보도 태도일지 모른다. 그러나 보다 바람직한 태도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범법행위가 드러나면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는 선진 법치주의의 원칙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5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비극적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시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사건들을 바로 보는 역사 의식인 것이다. 사건의 한 단면만을 보고 냄비 끓듯 하다가 곧 잊어버려서는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호흡을 길게 가지면서 사건의 전말을 최후까지 예의 주시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비극이 반복되는가.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 가운데 사법부의 온정적 판결과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들고자 한다. 만일 현철씨가 지금도 교도소에 있다면 김 대통령이나 이희호 여사가 홍걸씨를 그렇게 방치했을까. 홍걸씨도 그렇게 가볍게 처신했을까. 엄벌주의가 범죄 예방에 최선의 길은 아니지만 차선의 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한 점에서 이 사건은 현철씨를 쉽게 사면한 김 대통령의 자업자득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권력에 도취한 나머지 약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막아버리지는 않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참다운 경험은 법치주의에 대한 경험이고, 법치주의의 최후의 담보는 사법부의 독립이다. 그런데 양 김 대통령이 모두 독립적이지 못한 사법부의 피해자들이었다는 점에서(한 분은 사법부에 의해서 총재직무집행을 정지당했고, 한 분은 사형판결까지 받았다) 두 분이 사법부의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이러한 점에서 두 분에게 비극의 원인이 잠재해 있었다고 생각되고, 사법부도 그 원인의 일단을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면 나비 날갯짓에 태풍을 연결시키는 이야기가 될까.

어느 사건에 있어서 구속은 수사의 첫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범법자가 잘못에 상응한 처벌을 받는가, 그리고 그 처벌은 범죄 일반의 예방에 상당한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이 전과자를 양산하고(박지만씨의 경우도 온정적 처벌이 그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고 간 면이 커 보인다), 전과자들이 정치 일선에 다시 나서서 사법부와 국민을 우롱하는 후진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극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차기 대통령만은 사면권의 행사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장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막강한 사법행정권에 도취한 나머지 정책적 고려를 앞세워 헌법이나 법률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합헌적 합법적 사법행정을 펼침으로써 법관들이 양형 등에서 독립적으로 소신껏 재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줄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문흥수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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