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의 구속과 관련한 보도들로 연일 매스컴이 떠들썩하다. 대통령을 제왕과 동일시하고 그 아들을 왕자처럼 착각하는 수준에서는 당연한 보도 태도일지 모른다. 그러나 보다 바람직한 태도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범법행위가 드러나면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는 선진 법치주의의 원칙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5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비극적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시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사건들을 바로 보는 역사 의식인 것이다. 사건의 한 단면만을 보고 냄비 끓듯 하다가 곧 잊어버려서는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호흡을 길게 가지면서 사건의 전말을 최후까지 예의 주시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비극이 반복되는가.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 가운데 사법부의 온정적 판결과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들고자 한다. 만일 현철씨가 지금도 교도소에 있다면 김 대통령이나 이희호 여사가 홍걸씨를 그렇게 방치했을까. 홍걸씨도 그렇게 가볍게 처신했을까. 엄벌주의가 범죄 예방에 최선의 길은 아니지만 차선의 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한 점에서 이 사건은 현철씨를 쉽게 사면한 김 대통령의 자업자득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권력에 도취한 나머지 약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막아버리지는 않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참다운 경험은 법치주의에 대한 경험이고, 법치주의의 최후의 담보는 사법부의 독립이다. 그런데 양 김 대통령이 모두 독립적이지 못한 사법부의 피해자들이었다는 점에서(한 분은 사법부에 의해서 총재직무집행을 정지당했고, 한 분은 사형판결까지 받았다) 두 분이 사법부의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이러한 점에서 두 분에게 비극의 원인이 잠재해 있었다고 생각되고, 사법부도 그 원인의 일단을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면 나비 날갯짓에 태풍을 연결시키는 이야기가 될까.
어느 사건에 있어서 구속은 수사의 첫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범법자가 잘못에 상응한 처벌을 받는가, 그리고 그 처벌은 범죄 일반의 예방에 상당한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이 전과자를 양산하고(박지만씨의 경우도 온정적 처벌이 그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고 간 면이 커 보인다), 전과자들이 정치 일선에 다시 나서서 사법부와 국민을 우롱하는 후진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극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차기 대통령만은 사면권의 행사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장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막강한 사법행정권에 도취한 나머지 정책적 고려를 앞세워 헌법이나 법률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합헌적 합법적 사법행정을 펼침으로써 법관들이 양형 등에서 독립적으로 소신껏 재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줄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문흥수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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