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돈4]민주당 경선비용…경선기간 못써도 100억은 쓴다

  • 입력 2001년 12월 12일 18시 27분


《돈 없기로 소문난 민주당의 한 대선예비주자는 12일 “경선 비용을 얼마로 예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느닷없이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탁자 위에 내팽개쳤다. 그는 지갑 속에서 100만원권 수표 2장과 10만원권 수표 6장을 탁자 위에 꺼내 놓으며 “돈만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다”고 격한 어조로 고충을 토로했다. 경선이 다가올수록 여야 대선예비주자들의 근심도 깊어가고 있다. 대선 예비주자들에게 있어 ‘경선은 돈’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급한데 돈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라는 게 예비주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글 싣는 순서▼

- <1>얼마나 썼나
- <2>후원회와 후원금
- <3>어디에 얼마나 썼나?
- <4>민주당 경선비용
- <5>정치 브로커
- <6>제도개혁 어떻게

민주당의 A주자는 11월 한달 동안 지방의 대규모 후원행사 1회, 지방 강연 3회를 가졌다. 여야 의원 후원회는 모두 23회를 참석했다.

대규모 후원행사엔 대관료와 지구당 버스 동원비, 대의원 식사비용, 위원장 거마비 등을 포함해 대략 2억원 정도가 들었다. 지방행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지방에 갈 때마다 지역 지구당위원장들과 식사를 했고, 여기에 수행원(5명 정도)의 숙박비와 비행기표 등을 합해 모두 6000만원 정도가 들었다.

여기에다 각 지구당에서 활동 중인 ‘폴’(조직관리인) 활동비, 사무실 임대료 등을 포함하면 A주자의 11월 한달 지출 액수는 3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12월 들어 A주자의 일정은 더욱 바빠졌다. 각종 후원회가 40여차례 예정돼 있고 “우리 지구당에 들러달라”는 지구당위원장들의 요청도 급증하고 있다. 연말과 내년 설에는 대의원들에게 최소한의 선물이라도 돌려야 그나마 체면이 선다. 2만원짜리 선물을 1만여명에게 돌릴 경우 택배비용까지 대략 2억5000만원은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래도 A주자는 다른 후보에 비해 “써야할 돈을 못 쓰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처지다. 자신을 밀고 있는 지구당위원장들에게 정기적으로 관리비용을 지급하지도 못했고, 지역 폴의 규모도 다른 주자들에 비해 적은 편이라는 것. 그는 또 “유력 주자들은 의원 후원회 때마다 50만∼100만원을 부조하고 있지만 자신은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급에 따라 30만원, 20만원, 10만원씩 내고 있는 형편”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본격적인 경선이 시작되는 내년 1월로 들어가면 경선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은 지출이 이뤄지는 대목은 단연 조직관리비다. 대략 전체 경선 비용의 80∼90%가 조직관리비로 지출된다. 항목만 따져도 △지구당위원장 관리비 △지구당 간부 관리비 △지역책 활동비 △대의원 식사비 등 다양하다.

지난해 치러졌던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당시의 관행을 기준으로 90일 정도의 경선 기간 동안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추산해 보면 유력 예비주자들의 경우 직간접적인 비용이 총 100억원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는 게 경선캠프 관계자들의 얘기다.

당 특대위가 예비경선제를 도입하면서 예비주자들의 ‘돈 걱정’은 훨씬 커졌다.

5만명 규모의 선거인단이 구성될 경우 9000여명 단위의 기존 대의원들을 상대할 때보다 고액의 경선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부 빈곤한 예비주자들은 아예 조직 관리를 포기했지만 조직을 포기할 수 없는 유력 주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뒷돈을 준비해야 하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16개 시도별로 나눠서 치러질 권역별 경선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권역별 캠프도 설치해야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대비용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예비주자들은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올해 공식 후원회로부터 걷을 수 있는 3억원의 한도를 이미 다 소진한 상태에서 결국 음성적 자금이 없이는 경선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는 후원금을 예년의 두 배까지 모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정당 경선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대선예비주자들은 ‘실탄 확보’를 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한 예비주자는 “아직도 돈 없이는 대권후보가 되지 못하는 경선 풍토에서 예비경선제를 도입하고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고 총재직을 폐지하고 개혁을 잘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정용관·윤종구·부형권기자>yongari@donga.com

▼캠프 운영 비용은▼

민주당의 대선 예비주자들은 모두 일명 ‘캠프’로 불리는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캠프에는 기획홍보 조직 언론 정책 등을 담당하는 실무참모진이 상주한다.

민주당 김중권(金重權) 상임고문이 며칠 전 서울 여의도에 90평짜리 사무실을 마련함으로써 당내 대선 예비주자들은 모두 국회나 민주당사로부터 반경 300m 내에 캠프를 확보했다. 이인제(李仁濟) 상임고문은 97년 대선 직후인 98년부터 사용해온 정우빌딩 사무실(100평) 외에 150평 규모의 추가 사무실을 물색중이고 한화갑(韓和甲) 상임고문도 조만간 150평 규모의 사무실에 입주한다..

노무현(盧武鉉) 상임고문은 구 국민회의 당사 바로 옆 빌딩에 지방자치연구원이라는 사무실을 차렸으며 90평 규모에 30여명이 상근한다. 김근태(金槿泰) 상임고문은 작년 말부터 민주당사에서 가장 가까운 미주빌딩에 ‘한반도재단’이란 명패로 20여명이 근무하는 캠프(100평)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 지역에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는 평당 보증금 30여만원, 월세 3만∼4만원, 관리비 1만5000원이 든다는 게 캠프 관계자들의 전언. 100평 사무실인 경우 보증금 3000만원에 월 450만∼550만원이 드는 셈이다.

캠프에 상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경력에 따라 의원 보좌관(4급) 또는 비서관(5급)에 준해 월 250만∼300만원의 활동비가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비주자 캠프 관계자는 “최근 어떤 사람이 유능하다고 해 데려오려 했으나 월 1000만원을 요구해 포기한 적이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따라서 캠프 하나를 유지하려면 적게는 월 3000만원에서 많게는 월 1억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게 통설이다.

<윤종구기자>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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