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돈 5]정치 브로커 "인맥줄게 돈다오" 검은 거래

  • 입력 2001년 12월 13일 18시 09분


《“정치브로커가 이마에 ‘나는 브로커요’라고 쓰고 다닙니까.”

민주당의 한 인사는 13일 진승현(陳承鉉)씨로부터 돈을 받아 신광옥(辛光玉) 법무부 차관에게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최택곤(崔澤坤)씨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권력 핵심부와 안면이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정치브로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자의 측근과 정치브로커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의미였다.》

▼글 싣는 순서▼

- <1>얼마나 썼나
- <2>후원회와 후원금
- <3>어디에 얼마나 썼나?
- <4>민주당 경선비용
- <5>정치 브로커
- <6>제도개혁 어떻게

▽최택곤씨의 경우〓대선을 며칠 앞둔 97년 12월 중순, 최씨는 거의 매일 밤 군 관계자들과 만나 고스톱을 쳤다. 전방에서 올라오는 군 상황보고를 빼내 김대중(金大中) 후보측에 직보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김 후보측은 비선 정보라인을 통해 여당측이 ‘판문점 총기난사 사건’과 같은 ‘북풍(北風)’ 공작을 추진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초긴장 상태에 있었다. ROTC 출신으로 나름대로 상당한 군내 인맥을 구축하고 있었던 최씨는 당시 김 후보에게 단독으로 정보보고를 올릴 정도였다고 한다.

최씨는 역시 ROTC 출신인 김홍일(金弘一) 김홍업(金弘業)씨 등과도 ROTC 출신들의 ‘친(親) DJ화’를 위해 일하는 과정에서 교분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최씨는 현 정권 출범 후 국가정보원 국내담당 차장에 오르려고 시도도 했고, 16대 총선 때는 고향인 전북 김제에서 공천을 희망했지만 자신의 생각만큼 ‘관운’은 따르지 않았다.

결국 최씨가 생계를 위해 활용했던 자산은 여권과 군, 검찰, 국정원 내에 깔린 인맥이었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전언이다.

▽정치 브로커의 행태〓현 정권이 출범한 98년 당시 김중권(金重權) 대통령비서실장과 김홍일 의원의 첫 만남 과정은 정치 브로커의 행태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김 의원의 한 주변 인물이 김 실장측에 “김 의원님측의 누구입니다. 의원님이 뵙기를 원합니다”라고 전화를 했고, 다시 김 의원에게는 “김 실장이 의원님을 뵙자고 합니다”라고 보고를 했다.

서울시내 모 음식점에서 대면한 김 실장과 김 의원은 한참동안 서로 상대방이 무슨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 주변 인물은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것을 계기로 “김 의원님 부탁입니다”라며 청와대측에 각종 민원을 하려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 브로커들은 예외 없이 허세가 심하다. 그러나 ‘배달사고’를 내는 정치 브로커는 급이 낮은 축에 속한다. 대부분은 정확하게 배달을 하고, 대신 사례비를 챙기는 경우가 많다.

▽정치 브로커는 선거철에 양산된다〓선거철은 정치인들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에 선거 브로커들이 양산된다. 그리고 이들 선거 브로커는 관계를 맺은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이들을 등에 업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정치 브로커화하는 경우가 흔하다.

선거 브로커들과 정치 브로커들이 고비용 정치의 주된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은 정치권에선 공지의 사실. 동아일보사와 연세대 국제학연구소의 16대 총선 후보자 공동선거자금 실사 과정에서도 정치 브로커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났다.

한 낙선자는 “선거기간에 만난 브로커만 해도 50∼60여명으로 이들 중 10여명은 상대후보 진영과도 관계를 맺고 양다리 걸치기를 한 악질이었다”며 “이들은 시키지도 않은 선거운동을 했다며 음식점 상호가 찍힌 수십 장의 영수증을 갖고 와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3000만원까지 돈을 요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브로커 중에는 ‘당신의 불법 선거운동을 폭로해 버리겠다’며 협박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선후보 경선과 브로커〓대선후보 경선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민주당 주변엔 갑작스럽게 ‘○○건설회사 감사’ ‘××토목회사 대표’ 등의 명함을 들고 찾아와 동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었던 이들은 경선 주자 진영에 나타나 “지방자치단체 관급공사를 따려고 하는데 도와달라”고 민원을 해 경선 주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특정 지역에 자신들이 상당한 인맥과 표를 가지고 있음을 내세우면서 민원을 하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들은 “그 사람들이 건설이나 토목에 대해 뭘 알겠느냐”며 “지방건설업체의 오너들이 건설 수주를 받기 위해 권력에 선이 닿는 인사들을 채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당위원장 및 대의원들의 노골적인 ‘돈 요구’나 ‘인사 청탁’도 쇄도하고 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원외위원장들의 서울 후원회 행사가 줄을 잇고 있고, 대의원들의 경조사를 알리는 팩스도 경선 주자 캠프에 쏟아지고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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