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세무조사는 빅3신문 타격용"

  • 입력 2001년 10월 24일 18시 53분


언론사 세무조사는 현 정부의 언론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

한겨레신문 정치부 정당팀장인 성한용(成漢鏞·42) 차장은 최근 펴낸 저서 ‘DJ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도서출판 중심)에서 “국세청 세무조사는 동아일보 등 ‘빅3 신문’을 손보기 위한 ‘언론사 타격용’”이라고 주장했다. 성 차장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이후 2년8개월간 한겨레신문 청와대 출입기자로 근무하면서 취재한 정권 핵심 인사들의 발언내용을 근거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성 차장은 “김 대통령이 올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 한 대통령수석비서관이 ‘우리가 언론사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동아 조선 중앙은 길길이 뛸 것이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겨레가 줄기차게 요구한 ‘언론 개혁’을 곧 시작한다. 기사를 미리 쓰지 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성 차장은 또 “언론사 세무조사 착수 후 현정권의 실력자 가운데 한 사람은 ‘앞으로는 정권에 대한 기사를 비판적으로 쓰든, 호의적으로 쓰든 신문사 마음대로다. 대신 우리는 법률에 정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우리는 더 잃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성 차장은 이와 함께 이 책에서 현 정권이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한 원인으로 권력기관의 호남 편중인사로 인한 지역감정 악화, 민심 이반을 부른 옷로비 사건, 민주당의 4·13 총선 패배, DJ 측근들의 비리 연루 의혹 등을 꼽고, 이에 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다음은 언론사 세무조사 관련 주요 내용 요약.

▽DJ의 정권 초기 언론관〓DJ는 집권 초기 언론에 대해 대체로 낭만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DJ는 98년 ‘신문의 날’ 리셉션에서 “개인적으로 신문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당하기도 해 때로는 화도 나고 어떻게 해볼까 생각도 했으나, 어쨌든 언론 덕택으로 민주주의도 이만큼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는 김 대통령이 몇몇 신문은 손을 볼 생각도 있지만 참을테니 정권에 협조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DJ 집권 직후 시민단체와 청와대 내부에서도 힘이 있을 때 언론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DJ는 움직이지 않았다.

▽DJ가 ‘빅3’와 멀어진 계기〓98년 8월 ‘제2건국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동아일보가 정권 비판에 본격 가세했다. 조선일보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논조를 유지했다.

유력 일간지들이 DJ를 공격한 무기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지역문제가 가장 위력적이었다. ‘빅3’ 지면에는 ‘호남편중 인사’라는 제목이 끊이질 않았고 신문을 본 경상도의 민심은 갈수록 악화됐다. DJ는 차츰 언론에 대해 신경질적이 돼갔다.

98년 8월 한 대통령수석비서관은 언론 개혁에 대해 “좀 지켜보려고 한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작하면 사활을 건 전쟁이 된다. 이런 얘기가 나가면 큰일난다”고 털어놓았다. 하긴 해야 하는데 시기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98년 11월 한 대통령수석비서관이 술을 마시다가 문서를 하나 보여주면서 “언론이 이럴 수 없다. 중앙과 세계는 당장 작살내겠다. 조선도 두세달 내에 그냥 안 둔다. 국세청 상속세로 뒤집어 버리겠다”고 말했다.

▽세무조사 착수〓2000년 10월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됐다. 하지만 경상도의 분위기는 싸늘했고 ‘빅3 신문’은 경제난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정현준사건과 진승현사건 등 잇따라 터진 금융사고가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빅3’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갔다.

DJ의 2001년 연두회견은 집권 초기부터 유지해온 자율에 의한 언론 개혁 방침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DJ 발언 배경에 대해 “현 정권은 아무리 잘해도 비판을 받았다. 호남 편중인사 보도, 경제 위기를 과장하는 보도 경향 등은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국세청이 조사팀을 정비하고 내사에 착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DJ의 언론 개혁 발언이 나온 지 한 달도 채 안돼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청와대는 세무조사 착수 발표 직전 조선, 중앙일보에 세무조사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에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그만큼 현 정권이 동아일보를 미워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조선일보보다 더 지독하게 비판을 해서 훨씬 더 미워하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세무조사 기획 단계에서부터 깊숙이 개입한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빅3’가 정권에 쉽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임을 예상했다고 한다. 따라서 언론사 세무조사는 ‘언론사 길들이기’가 아니라 ‘언론사 타격용’이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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