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관련기관 변칙주식거래 확산

  • 입력 2001년 8월 8일 19시 36분


벤처기업과 유관 기관 직원간의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 유착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중소기업청 직원들의 변칙 벤처투자가 밝혀진 데 이어 감사원이 8일 벤처캐피털과 기술신용보증기금 및 채권금융기관 임직원들까지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파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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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칙 벤처투자 실태〓벤처기업과 유관 기관의 변칙 주식거래는 벤처기업이 접하는 모든 기관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데 다소 충격적이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벤처기업에 자금을 빌려준 은행, 투자에 나선 벤처캐피털, 투자에 앞서 신용보증서를 발급하는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일부 직원들이 일반 투자자에 비해 저가로 주식을 건네받았다. 감사원은 대가여부가 불분명하다고 밝혔지만 거액의 자금 지원이 이뤄진 뒤라 대가성으로 볼만한 여지가 많다는게 증권가의 평가다.

특히 일부 벤처캐피털업체의 심사역이나 기술신보의 직원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증언이다.

H벤처컨설팅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도 일부 벤처캐피털 심사역은 투자 집행에 앞서 개인적으로 싼 가격에 주식을 건네받거나 투자금액의 2∼3%를 커미션으로 제공받는 것을 조건으로 투자를 집행하겠다는 사례도 여러 차례 접했다”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통상 벤처기업들은 보험에 든다는 생각으로 유관 기관이나 정관계 인사들에게 낮은 배수로 증자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에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진공 임직원에게 주식을 싸게 넘긴 코스닥등록기업인 싸이버텍홀딩스 관계자도 “고마운 마음에 중진공 임직원에게 증자 참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벤처가 한창 호황을 누리던 99년말에는 증권회사의 일부 코스닥등록 담당 임직원과 애널리스트들까지 변칙거래에 가세해 거액을 챙긴 뒤 업계를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사원 적발 공직자 벤처 주식취득 비리유형과 사례▼

비리 유형대표적 사례
신용보증↔미공개주식-모 회사에 기업구조개선자금 2억원 대출되도록 신용평가해주고 주당 4만원 에 1000주 매입해 6억4998만원의 매매차익(중소기업진흥공단 3급 김모씨)
자금대출↔미공개주식-모 회사에 27억여원 대출해 주고 일반 공모가보다 주당 500원 싸게 2만주 매입하고 1만주는 공짜로 받아 총 1억6659만원의 매매차익(국민은행 모지 점 김모과장 외 3명)
투자승인↔미공개주식-모업체와 주당 4만원 총 10억원짜리 투자계약 체결하면서 부인 명의로 주당
1만원(액면가)에500주매입해2억799만원의매매차익(산은캐피탈㈜1급박모씨)
납품업체에 편의제공
↔미공개주식
-통신장비 납품 및 공사 업무 총괄하면서 모 납품업체의 주식 2000주 매입 (일반 공모시 20주 정도만 매입 가능)해 5억315만원의 매매차익(한전KDN ㈜ 4급 김모씨)
-전송장비 납품에 따른 장비검수업무 담당하면서 모 납품업체의 주식 3850 주를 주당 3만원에 매입해 총 1억6719만원의 매매차익(한국전기통신공사 2 급 홍모씨 등 6명)
벤처업체 간접 지원
↔미공개주식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중소벤처신문에 모 벤처회사의 기 사를 게재해주면서 2만4440주 매입해 4161만원의 매매차익(중소기업협동 조합중앙회 부장 황모씨)
-모 벤처업체를 특별지원대상업체로 추천해 주고 주당 1만원에 1000주 매입 해 1830만원의 매매차익(모 지방중소기업청 5급 김모씨)

▽신경 곤두세운 벤처시장〓시장에서는 그동안 설(說)로만 떠돌던 ‘검은 거래’가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수면으로 부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정부가 ‘벤처육성’을 거의 국시(國是)로 내걸면서도 제도적 장치나 감독 체계 등에 허점을 남겨 놓아 유사한 모럴해저드의 사례가 계속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시장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침체된 코스닥 발행 시장의 분위기가 이번 사건으로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벤처캐피털업체인 인터베스트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변칙 거래는 코스닥시장이 호황을 누리던 99년 말과 2000년 초반에 이뤄진 것인데 뒤늦게 부각되면서 가뜩이나 풀죽은 시장을 더욱 위축시키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도 지난해 10월 해당 벤처기업의 등록을 추진하는 증권사와 창투사의 임직원들은 해당 기업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을 강화했기 때문에 최근 이같은 모럴해저드는 많이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무차별적인 지원 아래 ‘유관 기관만 잘 구워삶으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심리가 남아 있는 한 벤처기업과 관련 기관과의 유착 의혹은 쉽게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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