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 남쪽서 마지막 밤]"도와주신 분들 잊지않겠다"

입력 2000-09-01 18:43수정 2009-09-22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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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을 하루 앞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악파크텔에 모여 간단한 건강검진과 방북안내 교육을 받은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 70여평 남짓한 호텔 로비에서 이들은 가족 및 지인들과 포옹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석별의 아쉬움을 나눴다.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눈에 띄는 지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던 김인수씨(78). 한 민가협 소속 여성 회원이 “우리를 잊지 않으시겠죠”라며 눈물을 글썽이자 김씨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잊다니요. 어떻게 여러분을 있겠습니까”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김씨는 북송되는 소감을 묻자 “기쁘다.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며 “아쉽고 서러웠던 것도 많았지만 이제 모두 잊었다. 북에 가더라도 이곳 사람들의 좋은 점만을 이야기하겠다”고 다짐했다.

남과 북에 각각 아내와 자녀를 뒀지만 북한행을 택한 윤희보씨(81)는 아내 박선애씨(74) 등 남쪽 가족과 이별해야 하는 경우. 그는 애써 눈물을 감추며 “아내가 건강하게 잘 있기를 바란다. 반도 전체가 우리 땅인데 누가 우리 만남을 막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윤씨는 몇몇 지인들이 마침 이날 정오경 출판된 자신의 회고록 ‘해마중 가세’를 들고 찾아오자 반가운 표정으로 일일이 책에 ‘영광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라고 사인을 해 주기도 했다.

72년 출감 후 결혼, 22세와 26세의 두 딸과 아내(63)를 두고 북송을 택한 석용화씨(75) 주변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평생 사회주의를 신봉했기에 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석씨의 입장이지만 “아빠, 건강하셔야 해요”라며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두 딸 앞에서 내내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평소 기자들에게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최장기수(42년 복역) 김선명씨(76). 몸이 다소 불편한 듯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앉아 있던 김씨는 이날도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몇 번이나 거절하다 “선생님, 오늘이 남한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라는 말에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자유왕래가 반드시 이뤄져 동포가 모두 서로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모처럼 기자들에게 “다들 건강하세요”라며 환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날 파크텔에는 100여명의 취재진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여 이들의 북송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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