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서울에서]눈물로 쓴 사모곡 읽다 끝내 오열

  • 입력 2000년 8월 17일 18시 57분


이별을 하루 앞둔 17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선 몸을 제대로 못가누는 노모와 북에서 온 육순(六旬)의 두 아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상봉 속에 애절한 대화를 나눠 보는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조진용씨(69)는 이날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어머니 정선화씨(94) 앞에 무릎을 꿇고 자작시를 낭독했다.

‘이 아들 떠나보낼 때 검은 머리의 어머니, 주름 깊게 패어 아들 맞으니 이것이 어쩐 일입니까. 통일의 그 날 이 아들 다시 한번 안아주십시오.’

몸이 불편한 정씨는 한복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아들이 읽어 내려가는 시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연방 “잘 살면 됐다. 계속 잘 살아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만 되뇌었다.

시는 계속됐다.

‘서울대 법대 1학년 시절, 어려운 일 해냈다며 그토록 자랑스러워하시던 어머니. 고교시절 밤새워 책상 앞에 앉은 아들이 안쓰러워 툇마루에 앉아 같이 잠 못 이루시던 나의 어머니…어머니, 인생은 이별과 상봉이죠.짤막한 저의 심정을 글로 담았습니다..’

편지지 2쪽에 쓴 사모곡(思母曲)을 다 읽을 무렵 조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노모의 손을 꼭 잡고 “통일이 될 때까지 꼭 살아계세요”라며 울먹였다.

김일성대 교수 출신인 조주경씨(68)도 이날 어머니 신재순씨(89)와 만나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다.

어머니 신씨는 “슬퍼서 눈물이 나고 기뻐서 눈물이 나고 그런다”며 눈가를 훔쳤다. 그러면서 마치 아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눈 속에 담아두려는 것처럼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조씨는 “너무 빨리 가게 돼 아쉽다. 조금 오래 봤으면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신씨는 슬하에 ‘딸 둘에 아들 둘’을 뒀다는 아들 조씨의 말에 한번도 보지 못한 손자의 얼굴을 마음 속으로 그리며 혼자말로 “손자가 보고 싶어. 그렇지만 법대로 해야지. 통일이 되면 볼 수 있겠지”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팔순 노모와 육순의 아들은 서로 주름진 손을 맞잡고 놓을 줄 몰랐다.<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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