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D-5]곧 만날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3통

  • 입력 2000년 8월 9일 19시 01분


《50년을 참고 기다려왔건만 헤어졌던 북의 가족을 만날 날을 닷새 앞둔 남쪽의 이산가족들에게 요즘 하루는 길기만 하다. 할 말은 많지만 들어줄 사람은 아직 북에 있고…. 남쪽의 이산가족들이 북의 가족에게 보내는 애끓는 사연의 편지 3통을 소개한다.》

▼이선행씨(80·서울 중랑구 망우동)"진일엄마 용서하오"▼

진일이 어머니. 이 세상 뜬 줄 알았는데 용케 살아계셨구려.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50년 11월 피란길에 나선 후 남편 노릇 제대로 못한 50년 세월이 당신을 ‘여보’라고 부를 용기도 앗아갔네. 그 때 대동강 다리가 끊어지지만 않았더라도, 그래서 당신이 내 뒤를 따를 수만 있었더라도….

그동안 얼마나 고생 많았겠느냐는 말은 하지 않겠소. 다만 용서를 구할 뿐입니다.

큰아들 진일아. 아들 몫에 아버지 몫까지 하느라 이 애비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이 애비는 당시 일곱살이었던 네가 이렇게 어머니 모시고 살아 있어 준 것만도 하늘에 감사한다. 네 혼자 힘만으로는 힘들었겠지.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지난 주말 동대문 시장에 들러 가방을 샀다. 한 시간을 헤매다 네바퀴가 달린 큼지막한 가방으로 골랐다.

진일아, 무엇이 갖고 싶으냐. 이 애비는 요즘 그 가방에 가득 채울, 태어나서 처음 너에게 건네는 선물 고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단다. 우선 시계를 골랐다. 값나가는 건 아니지만 유용할 게다. 어머니와 함께 사진 찍으라고 카메라도 샀다.

진일이 어머니. 당신 것은 아직 못 골랐다오.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이 뭔지 아직까지도 오락가락해. 우리 만나서 마저 얘기합시다.

▼이지연씨(52·KBS 아나운서·여) "오빠 어서 달려오세요"

내성 오빠, 저 막내 지연이에요. 제가 세 살 때, 우리 식구들 가슴에 피멍 울음을 안기고 사라졌던 열아홉살 오빠가 이제는 오빠의 두 살배기 조카 손녀가 생긴 후에야 반백의 모습으로 저희들 앞에 나타나시는군요.

오빠. 오늘 낮엔 76세의 큰언니 점순과 셋째 언니 점남, 넷째 언니 점학, 그리고 저 넷이 모여서 오빠 내려오시면 드릴 사진을 찍었어요. 부모님과 둘째 점례 언니는 오빠를 보지도 못한 채 먼 나라로 떠나셨죠. 그렇게도 오빠를 그리워했던 세분이셨는데….

아세요? 오빠는 우리 집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을. 사진 속 오빠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에서 고단한 세월을 견뎌온 흔적을 보고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하고, 부드러운 웃음을 띤 표정에 안도하며 어쩜 이제야 소식을 전해왔나,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이제야 부모님 한을 풀어드렸다. 이제 누구도 우리를 무시할 사람은 없다’며 즐거워하는 언니들의 들뜬 모습에서 오빠는 역시 우리 집안의 영원한 희망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오빠, 오래 사셔야 합니다. 오래 사셔야 통일을 보고 서로 보고 싶을 때 자유롭게 전화하고 오갈 수 있겠지요. 오늘 오빠 오시면 안겨 드리려고 찍어 놓은 부모님 묘소 사진을 다시 챙겼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이래성’이라는 오빠의 이름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언젠가 살아서 돌아오실 오빠의 이름을 새겨 두었지요. 어릴 적 오빠가 보고 싶을 때 부르던 ‘오빠 생각’이란 동요를 들어도 이젠 눈물이 나지 않을 거예요.

‘이번에 만나면 생전에 다시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팔순 앞둔 큰언니의 말에도 슬퍼하지 않을 겁니다. 오빠는 분명 한반도 한 곳에 우리의 희망으로 살아계시니까요. 오빠, 어서 달려오세요.

▼노범석씨(76·서울 광진구 구의동) "벌써 애엄마가 됐다니"

막내딸 순복아, 애비다. 지난해 봄 큰 딸 순덕이가 편지로 나를 찾는다고 했을 때만 해도 꿈인지 생시인지 했다. 그 영민했던 순덕이가 이 못난 애비 때문에 공부도 제대로 못해 직접 편지를 쓰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억장이 무너졌단다. 그런데 그런 순덕이가 세상을 뜨다니, 차라리 그 편지를 보내지나 말지….

순복아 결혼은 했느냐, 자식은 얼마나 뒀느냐? 순덕이는 8남매나 뒀다고 했는데. 1·4후퇴 때 고향 땅에서 헤어질 때 순복이 너는 세살이었지. 품 안의 갓난아기가 벌써 애 엄마가 됐다니 허망하게 지나간 50년이 다시 한번 원망스러울 뿐이다. 내 막내 사위는 어떤 사람인고. 애비 없이 혼사를 치러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누. 고향에 올라가면 너를 탈 없이 지켜준 사위 손을 꼭 붙들고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죽기 전 북망산천에 올라 큰 소리로 ‘내가 왔노라’고 소리 질러 보고 싶었는데 그 소원을 이제야 이루려나보다. 이제야 조상들에게 죄를 조금이나마 덜고 죽을 수 있겠다. 순복아 조금만 기다리거라. 애비가 간다.

<정리〓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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