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감격의 만남 준비는 이렇게!

  • 입력 2000년 8월 2일 18시 34분


《8·15 상봉을 앞둔 실향민들은 요즘 밤잠을 못 이룬다. 만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마음만 바쁘다. 그동안 예측할 수 없는 남북관계 상황에 익숙하다 보니 눈앞에 가족들 얼굴을 대할 순간까지 진정 만남이 이뤄질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다. 50여년 분단의 장벽을 넘어 상봉을 준비하는 이들의 구체적인 상봉 계획과 상봉 경험 1세대격인 이재운(李在運)변호사의 경험담을 들어본다.》

▽이렇게 준비한다〓대구 달서구 강성덕(姜聖德·66)할머니는 “아홉 남매 중 유일하게 북에 두고 온 둘째언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부모님은 돌아가실 때 눈을 제대로 못 감았다”며 “만나면 부모님 기일부터 먼저 알리겠다”고 말했다. 강할머니는 또 가족사진을 주고받아야 할 것 같아 남한의 형제 자매들과 그 자식들의 사진을 돌아가며 찍고 있다.

6·25전쟁 때 헤어진 오빠를 만나게 되는 아나운서 이지연씨(52·83년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진행)는 “군산의 부모님 묘소에 함께 가기 어려울 것 같아 묘지와 오빠 이름이 새겨진 비문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며 “오빠를 만나면 자기 식구의 안부도 물어달라는 전국 이산가족들의 편지를 50통 가량 받아 이것도 큰 일”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이산가족들은 남쪽이 북쪽보다 형편이 낫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뭔가 도움이 될 것들을 들려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본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계와 돈(17.3%)이 가장 많았고 의복(11.1%) 속옷(7.4%) 반지(6.2%) TV(3.7%) 가족사진(3.7%) 의약품(2.5%) 한복(1.2%) 등의 순이었다.

장두현(張斗顯·73·경기 화성군 장안면)씨는 “늘 몸에 지닐 수 있는 품목을 궁리하다 손목시계를 장만했다”며 이미 남성 여성용 시계 5개씩을 준비해 놓았다고 한다. 형제들에게 줄 은수저와 화장품 비누세트, 각종 상비약들도 준비했다. 이 밖에 선우예환(鮮于豫煥·77·서울 동작구 상도동)씨는 ‘족보’를 최우선 준비물로 꼽았고 김선희(金善嬉·77·경기 안양시)할머니는 ‘성경책’과 돋보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생활형편이 넉넉지 못한 이산가족들은 벌써부터 한숨이다. 백홍길(白弘吉·69·경기 화성군)씨는 “명예퇴직한 둘째아들이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인 데다 야채 행상을 하는 아내도 벌이가 신통치 않아 걱정”이라며 “그저 생사 확인한 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위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85년 방북상봉 이재운변호사 "체제관련 언급말길"▼

▽이렇게 준비하라〓85년 제1차 고향방문단에 포함돼 북한에서 가족들을 만났던 이재운 변호사는 “만남 그 자체보다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또 “헤어질 때 제일 안타까웠던 것이 못 먹고 못 입는 형편을 보고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이었다”며 “앞으로 만남이 정례화될 가능성이 높으니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후 서신교환에 대비해 만나는 사람 외에 다른 가족들의 생사확인과 거주지 직장 주소교환도 필수이며 돌아가신 분의 산소 위치도 꼼꼼히 물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 대한 충분한 사전지식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것을 당부했다. “절대 잘사는 티를 내선 안된다. 체제에 관한 민감한 주제는 생략하고 ‘제사는 어떻게 지내는지’‘시집간 딸이 친정에는 자주 오는지’ 등의 내용을 화제로 삼아야 한다.”

이변호사는 현재 북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의약품이라며 결핵환자가 특히 많기 때문에 다양한 결핵약을 준비하고 간장약이나 소화제 비타민 등도 함께 준비하면 좋다고 말했다.

이변호사는 “요즘 북한정부는 주민들이 남한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예전에 비해 문호를 많이 개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형편이 닿는 대로 엔화나 달러화를 좀 준비해 가는 것도 좋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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