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선언이후]'연합-연방제 혼선' 통일방안 공론화해야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예상했던 대로 ‘6·15 남북공동선언’에 언급된 ‘자주적 통일’ 원칙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둘러싸고 내부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요체는 특히 ‘연방제’ 대목. 오랫동안 북측이 계속 제기해 온 이 통일 방안은 많은 국민에게 ‘북측이 통일과 관련해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하려는 책략’으로 인식돼 있다.

비록 ‘낮은 단계의’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이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혼신을 다해 설득했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설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측 주도로 이루어진 합의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더 나아가 자칫 국론 분열의 양상이 초래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는 무엇보다 정파는 물론 정권적 차원을 뛰어넘는 통일 방안 문제에 대한 사전 공론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의 성격을 감안할 때 사전 공론화는 불가능했다 해도 이번 김대통령의 방북 과정 어디에서도 통일 방안을 비롯한 주요 정책들을 투명하게 ‘국론화(國論化)’하는 절차나 과정에 대한 원칙 개진이 없었다는 점이 지적된다.

북한은 현실적으로 김국방위원장의 ‘말’을 곧 ‘국책(國策)’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국회 국무회의 등 주요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데 거쳐야 할 기관과 국민투표라는 제도 등이 헌법상 국론 결정 절차로 명시돼 있다.

이번 선언에서 거론된 ‘연합’이라는 개념은 김대통령이 수십년간 개인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노작(勞作) ‘3단계 통일론’의 틀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이 통일론이 우리 헌정 체제에서 곧바로 ‘국책’이 될 수 있느냐, 또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병렬시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김대통령이 김국방위원장과 합의한 통일 논의의 진상이 어떠한 것이었으며 어떤 배경에서 출발한 것인지를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과거 정부는 통일 문제를 다룰 때 나름대로 국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이 89년 8월15일 제44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천명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구상도 국회 논의 과정과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 결과를 반영한 것이었다.

송영대(宋榮大)전통일원차관은 “‘자주’라는 개념을 둘러싸고도 그동안 우리측은 당사자 원칙으로 해석했고, 북측은 외세배격 주한미군철수 등으로 해석해 왔다”며 “남측의 연합제만 해도 과거 정권이 제시했던 국가연합의 개념인지,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 입각한 연합 개념인지 구분이 모호해 이를 둘러싼 해석상의 갈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허문영(許文寧)통일연구원 통일정책실장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91년 김일성(金日成)전주석이 신년사를 통해 강조한 ‘느슨한 연방제’ 개념”이라며 “국민에게 이 부분에 대한 투명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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