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포커스 이사람]김덕룡 한나라당부총재

  • 입력 2000년 5월 3일 19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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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59·4선)부총재는 ‘절제(節制)의 정치인’으로 통한다. 잠자는 시간은 하루 서너시간. 새벽 등산부터 시작되는 지역구(서울 서초을) 관리와 계파 챙기기, 자정이 넘도록 이어지는 상가집 순방을 소화해내는 그를 보고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2년동안 김부총재를 곁에서 지켜본 측근 구본태(具本泰)씨는 “도무지 과(過)라는 글자를 모르는 자기 절제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밑천으로 그는 호남(전북 익산)출신이면서도 YS 정권의 실세로 올라섰고 YS 정권의 수명이 다한 지금까지도 야당의 차세대주자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빈틈이 없다’는 점은 종종 ‘양날의 칼’로 지적되기도 한다. “입이 무겁다”(박명환·朴明煥의원)는 평가는 ‘대중성’이 부족한 정치인이란 평으로 이어졌다. 매사에 자로 잰 듯한 신중함을 보이는 그에 대해 “야당총재인 YS 비서를 너무 오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따라 다닌다.

그가 당내에서 수위를 다투는 계파를 자랑하면서도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정치판에 뛰어든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97년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 98년 한나라당 총재 경선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주인(主因) 중 하나도 ‘대중성 부족’이 아니냐는 얘기도 적지 않다.

그러나 “DR(김부총재의 영문이니셜)가 야당 총재를 해봤느냐, 국무총리를 해봤느냐. 대중적 인기가 부족한 것은 무대 전면에 설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라는 게 김부총재측의 항변이다.

아무튼 DR는 다시 ‘무대 전면’에 나서겠다는 결심을 굳힌 듯하다. 3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총재에게 도전장을 내기로 한 것. 하지만 상황은 전보다 훨씬 열악하다. 총선 승리로 ‘이회창대세론’이 형성된 가운데 총재 경선에 도전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게 당안팎의 지배적 시각이다.

요즘 김부총재는 기회있을 때마다 “1인보스 체제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YS나 DJ도 이총재처럼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하지는 않았다. 당내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지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영남출신 부총재 경선후보와 함께 ‘러닝메이트’로 나서 호남 출신의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게 DR측의 복안. 설사 총재는 못 돼도 확실한 득표력으로 이총재와 대립각을 세워 ‘차기’를 도모해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호남출신이라는 ‘운명적 굴레’와 이회창이라는 ‘숙명적 장벽’의 틈바구니에서 DR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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