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 탈법 저질 난무…선관위 "이런 혼탁 처음본다"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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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을 이끌 ‘선량(選良)’을 뽑는 16대 총선전이 여야의 거듭된 공명선거 다짐과는 거꾸로 후반으로 가면서 저질 타락상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선관위 관계자들의 입에서조차 “근래 선거 중 유례 없는 혼탁 선거”라는 자탄의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의 선거 혼탁상은 극에 달한 상호비방과 흑색선전에다 공권력 무시 현상 및 고질적인 지역감정 조장행위까지 겹쳐 마치 각당이 그동안 선거사를 얼룩지게했던 구태(舊態)를 총동원해 결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이같은 혼탁 과열 양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역주의와 흑색선전을 대체할 유효한 선거 구도가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귀결”이라고 지적한다.

▼정책경쟁 아예 뒷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민주 대 반(反)민주의 대결 구도가 분명했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경제 성장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개발독재론’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으나 이런 쟁점이 사라지면서 지역주의와 네거티브 캠페인이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부상하게 됐다는 것.

중앙선관위 임좌순(任左淳)사무차장은 “특히 시민단체들의 ‘낙천의원 명단’ 발표와 후보신상 공개 이후 선거 쟁점이 개별 후보의 도덕성 문제로 옮겨가면서 중앙당까지 비방중상전에 나서는 등 네거티브 캠페인이 더욱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서강대 손호철(孫浩哲)교수는 “여야간의 정책 공방도 국부 유출이나 국가채무 공방 등 정쟁(政爭)적 요소만 불거졌을 뿐 21세기 한국의 미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는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공권력 땅에 떨어져▼

한편 선관위 단속원들이 후보운동원들에게 폭행당하는 등 국가 공권력 무시 현상도 이번 총선에서 두드러진 양상. 전문가들은 “공권력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이런 아노미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손교수는 “95년 지방자치선거 당시 여권이 의지를 갖고 공명선거를 솔선함으로써 비교적 돈 안 쓰는 선거가 이뤄졌다”고 여권의 ‘의지’를 주문한 뒤 “야당도 대여 공세로 일관하기보다 정책 대안 제시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관기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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