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신청자 피말리는 24시]"눈도장이라도" 실세주변 기웃

  • 입력 2000년 2월 15일 19시 33분


민주당 호남지역에 공천을 신청한 K씨는 14일 오전6시에 일어났다. 아침 식사를 하기에 앞서 집에 배달된 조간신문들을 샅샅이 훑었다.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거론됐나 보기 위해서다. 다행히 이날은 한 개 신문에 자신의 이름이 유력 경합자로 올랐다. 조마조마하던 마음에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지역에서 확인 전화도 걸려왔다.

괜찮은 기분으로 오전8시반경 당사에 ‘출근’했다. 오전 내내 당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공천에 영향을 미칠만한 핵심 당직자는 도대체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 등 ‘실세’들은 아예 “공천 관계로 찾아오는 사람은 들여보내지 말라”고 비서실에 지시를 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날은 총장실 앞에서 대기하다가 점심 식사를 위해 문을 나서는 김총장에게 잠깐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무처 당직자 A씨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열심히 공천 상황을 귀동냥했다. “누구는 모 실세가 밀고 있는 것 같다” “누가 어떤 실세를 만났는데 당신에 대해 좋게 얘기했다더라” 는 등의 얘기다.

오후에는 A씨가 거론한 공천 실세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지만 허사였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하는 자괴심도 “그래도…”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저녁에 케이크 몇 개를 샀다. 당직자와 공천심사위원의 집을 순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며칠전만 해도 잠깐씩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이날은 일제히 ‘문전축객(門前逐客)’이다.

아무 성과 없이 돌아서려니 “‘지역은 걱정말고 서울서 공천만 받아오라”고 한 고향 사람들에게 체면은 세워야 할텐데…”하는 생각에 다리의 힘이 빠졌다.지기 시작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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