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언론을 통한 국민의 여론에 좌우된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에서 국가이익을 올바로 지키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외교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여론을 상대로 한 해외홍보활동을 소홀히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압력으로 50년대 초부터 미국의 해외홍보를 맡아온 연방정부의 독립기구인 미국해외공보처(USIA)를 축소해서 내년까지 국무부에 통합하기로 했다.
▼ 조각난 이미지 복구 시급 ▼
의회가 해외공보처를 축소 통합시키고자 하는 논거는 냉전 이후에 미국의 달라진 위상을 고려한 것이다. 즉 오늘날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과 가장 방대하고 안정된 경제력을 가진 초강대국이라는 강점을 가졌기 때문에 해외에서 홍보외교를 강화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지금 한국경제에 대한 이미지는 산산조각이 나있다. 하루 속히 이를 새롭게 복구해야 할 입장이다. 북한으로부터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 상존한데도 미국인들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지난 몇십년 동안 미국인들은 국제적으로 안정된 안보환경 속에서 경제호황을 누리면서 국내 문제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국민이 뽑은 의사당의 선량들도 국제문제에는 눈이 멀어졌다. 미의회가 행정부가 요구한 국제통화기금(IMF) 추가 출연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증좌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정권 인수팀과 국회가 정부조직개편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홍보기능이 어느 부처로 통합되든 문제는 이번 개편으로 자칫 가뜩이나 취약한 한국의 해외홍보 역량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우방인 만큼 해외홍보 문제도 미국에서의 사례가 의미있다고 본다. 한국은 미국인들이 경제 정치 안보 측면에서의 우호적 협조가 양국의 국가 이익과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미국인들 대부분은 한국에 대하여 잘 모른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가운데 겨우 2%가 북한 문제를 미국의 주요 외교 현안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 여론에 절대적으로 지배받는 미국의회는 한국 홍보 외교의 도전장(挑戰場)이라고 하겠다. 94년 이후 상하 양원 5백35명의원 중 50% 이상이 갈렸다. 냉전 이후 내향성(內向性)이 강해지고 연령층이 젊어진 의사당이다. 과거 한국전쟁의 인연으로 맺어진 한국에 대한 친한적인 호의와 이해는 이제 급격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날 정부와 정부간의 의사소통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한국은 지난 5년간 해외홍보를 소홀히한 나머지 대외 이미지를 악화시켰다. 93년 이후 문민정부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적극적인 해외홍보를 벌일 필요가 없다고 보고 한국의 국익과 정책을 미국인들이 스스로 알아주고 지원해주려니 생각한 것이다. 중대한 실수였다. 결과는 한미 동맹관계에서 상당한 손실을 초래하고 말았다. 한국이 미국민과 미디어, 여론지도층, 의회, 심지어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닦아온 유대가 느슨해지다 못해 때로는 팽팽한 갈등까지 일으켰다. 예컨대, 북한 정책을 놓고 벌어진 서울과 워싱턴의 긴장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 미국민들과 의회는 IMF 지원문제를 두고 한국 경제의 실수를 만회시키는데 왜 미국 납세자의 돈을 쓰느냐는 의문을 던질 정도다.
▼ 대만-이스라엘例 적극 활용 ▼
한국은 지금이야말로 해외홍보활동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될 때다. 미국에서 대만과 이스라엘의 해외홍보 노력을 크게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두 나라는 한국처럼 미국과 사활이 걸린 이해를 같이하는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차기대통령의 민주화 업적과 경제개혁 의지가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그의 이미지를 미국 전역에 홍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다릴 프렁크<헤리티지재단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