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차기대통령 당선 한달]3년 같았던 30일

입력 1998-01-17 20:29수정 2009-09-2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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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이 19일로 당선확정 뒤 한 달을 맞는다. 김차기대통령에게 지난 한달은 너무나 숨가쁘고 빠르게 흘러갔다. 국난(國難) 극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오는 2월25일 시작되는 대통령임기를 두 달이나 앞당겨 시작한 셈이었다. 김차기대통령은 당선 확정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0일 임창열(林昌烈)경제부총리로부터 외환위기상황을 보고받는 것을 시작으로 국제통화기금(IMF)체제 극복을 위한 진두지휘에 나섰다. 먼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협력을 구했다. 또 미셸 캉드쉬 IMF총재, 제임스 울픈슨 세계은행(IBRD)총재, 사토 미츠오 아시아개발은행(ADB)총재,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일본총리에게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당선축하연을 열어 샴페인을 터뜨릴 틈도,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그저 ‘하루앞을 내다보기 힘든’ 국난을 벗어나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뛰는 길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지난해 12월22일 방한한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부차관과의 담판은 절박한 외환위기 상황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김차기대통령은 IMF협약 이행의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립튼차관에게 ‘확실한’ 신뢰감을 심어줬고 25일 IMF와 G7의 1백억달러 조기지원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일산자택에서 벌인 국제 금융계인사들과의 연쇄 면담도 국제사회의 신인도를 제고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산자택에는 캉드쉬 총재,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회장, 샌포드 웨일 미트래블러스그룹 회장, 로렌스 서머스 재무부 부장관, 제임스 하몬 미수출입은행총재,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등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같은 대외적 노력과 함께 김차기대통령은 ‘재벌개혁’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라는 내부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청와대→정부→기업→노동계’로 이어지는 ‘개혁확산’을 목표로 그는 먼저 청와대와 정부의 조직 축소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상호지급보증 금지와 결합재무제표 조기도입 추진 등을 통해 대기업의 방만한 부실경영에 족쇄를 채웠다. 또 정부와 기업의 개혁을 지렛대 삼아 노동계에도 정리해고제 조기도입이라는 고통분담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경제5단체장 간담회(12월24일), 한국노총 간담회(12월26일), 민주노총 간담회(12월27일), 시중은행장들과의 간담회(1월9일), 4대그룹재벌총수 간담회(1월13일)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 결과 15일에는 노사정(勞使政)위원회를 사상 처음으로 발족, 노사정 대타협의 기반을 마련했다. 김차기대통령은 지난 한달간 현 위기상황에 대한 원인진단과 처방제시를 동시에 진행하는 데 상당부분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국가부도사태를 피할 수 있는 실마리는 풀었다는 뜻이다. 각종 경제지표도 안정을 회복하는 추세다. 주가의 상승세가 시작됐고 환율과 금리는 하향세로 돌아섰다. 외국투자자들의 시각도 호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핵심과제는 김차기대통령이 내세운 개혁지표의 차질없는 실천이다. 그러나 김차기대통령의 앞날은 여전히 불안의 그림자에 휩싸여있다. 재벌개혁, 노동시장 유연성확보, 노사정협약 도출 등 어느 하나라도 파열음을 낼 경우 지금 나라살림을 간신히 지탱해주고 있는 ‘살얼음판’이 깨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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