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DJ)국민회의총재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면반전을 노렸던 신한국당은 예상과는 달리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재계의 반발 등 부작용만 심화되자 또다시 내분의 수렁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특히 12일 밤의 당 중진 8인 모임을 둘러싸고도 이총재측 및 핵심당직자들이 불만을 터뜨리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차제에 확실히 정리할 것은 정리하자』는 인책론이 본격 대두되고 있어 신한국당의 혼돈이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13일 오전에 열린 주요당직자회의 참석자들은 전날 밤 「8인 중진모임」에서 오간 논의결과를 놓고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은 『당 중진들이 뒷받침해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중진모임에서 이상한 말이 나오는 바람에 솔직히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총재 측근들도 『「비자금정국」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는 당의 어려운 사정을 도외시한 처사』라며 일제히 중진들을 성토했다. 이총재측의 한 중진의원은 『「DJ 비자금」폭로가 최근 양비론(兩非論)으로 치닫는 상황을 고려할 때 중진들이 당내 분란으로 비쳐지는 모임을 가진 것은 신중치 못한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해 이한동(李漢東)대표는 『어제 중진회의의 결론은 검찰수사를 통해 김총재 비자금의 진상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언론에 몇가지 대화내용만 부각돼 그렇게 됐다』며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식으로 파문을 봉합하는데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어 열린 확대당직자회의에서 한 참석자가 『시중에서 「여당은 돈을 안 썼느냐」는 말이 나돌고 기업쪽의 여론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으나 강총장은 『지금 일부 언론은 우리 당의 불협화음에만 관심이 있다』며 언론의 탓으로 돌리면서 다시 한번 당의 결속을 강조했다.
이대표는 회의 막바지에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점에서 「후퇴하는 것은 자멸」이라는 각오로 김총재 비자금의 진실이 밝혀지도록 당이 하나가 돼서 최선을 다하자』고 정리한 뒤 회의를 끝냈다.
○…그러나 한 당직자는 「8인 중진모임」에 대해 『모임에서 민주계 중진들이 사태수습에 협조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여 분위기가 굉장히 안 좋았던 것으로 안다』며 『지금은 상황을 분명하게 정리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견해가 민정계쪽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당직자는 또 『당초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하는 듯했던 박찬종(朴燦鍾)고문도 다시 백의종군론을 내세우는 등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이제 이총재와 김윤환(金潤煥)고문 등 민정계 주력들이 의견조율을 다시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당내 민정계와 민주계 사이에 「DJ 비자금」 폭로전을 누가 주도했느냐 하는 책임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물밑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김윤환고문 등 민정계측은 『「DJ 비자금」을 제공한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할 경우 예상되는 반발을 모를 리가 없을텐데 이총재가 전적으로 이 모든 일을 결정했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며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청와대의 주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반면 김덕룡(金德龍) 서청원(徐淸源)의원 등 민주계측은 『이번 폭로전은 전적으로 이총재의 책임하에 강총장이 주도한 것』이라며 『김대통령과 이번 사건을 결부시키는 것은 난센스』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강총장은 『청와대와 사전 조율은 없었다』며 당의 독자적 결정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DJ 비자금」 폭로전의 인책론은 8인 중진모임에서도 『누군가는 이토록 상황을 악화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심각한 사안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인책론의 과녁은 폭로전을 주도한 강총장에 모아지는 분위기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며칠전부터 당안팎에서 나돈 「모종의 청와대 음모설」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김윤환고문을 비롯한 민정계쪽에서 『그런 엄청난 일을 청와대 개입없이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총재를 끌어내리고 뭔가 다른 길을 찾으려는 「이중플레이」일 가능성이 크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정연욱·김정훈기자〉